금융당국이 소비자 피해를 줄이자는 취지로 소규모펀드 청산·합병을 유도하고 있지만 설정액이 수억원에 불과한 ‘자투리펀드’는 오히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운용사들이 새로 출시하는 펀드에 자금이 많이 유입되지 않는 데다 기존 펀드에선 오히려 돈이 빠지고 있어서다. 펀드규모가 작으면 분산 투자를 할 수 없어 안정된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증시 침체…자투리펀드 증가

금융당국, 청산·합병 나섰지만…50억 미만 '자투리펀드' 되레 늘어
자투리 펀드란 설정 후 1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규모가 50억원을 밑도는 소규모펀드를 말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소규모 펀드는 작년 말 기준 804개로, 전년(790개) 대비 1.8% 늘었다. 금융당국이 2011년 소규모펀드 집중 정리계획을 발표한 뒤 그해 30.6%, 2012년 23.3% 줄었지만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공모펀드에서 소규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2년 34.8%에서 작년 말 36.2%로 확대됐다.

소규모펀드가 되레 늘어나는 원인으로는 수년간 계속돼 온 증시 침체가 우선 꼽힌다. 새 펀드로 자금이 들어오지 않고, 기존 펀드에선 환매가 늘면서 설정액이 쪼그라든 펀드가 늘어났다. 불황을 맞은 금융사들이 ‘일단 찍어내고 보자’ 식으로 새 펀드를 쏟아낸 것도 주요 배경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펀드 가입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펀드 규모가 작으면 수수료 수입이 적은 운용사들이 관리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수익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소규모펀드의 경우 기본적으로 분산 투자를 하기 어려운 데다 펀드를 여러 개 맡고 있는 매니저들이 소홀하기도 쉽다”고 지적했다.

◆운용업계 “합병·청산 더 쉽게”

금융투자협회는 당국에 제도 개선을 건의하기로 했다. 지금은 소규모펀드끼리만 수익자총회를 거치지 않고 합병할 수 있는데, 소규모펀드와 대형펀드를 합칠 때도 가능하도록 자본시장법 등의 개정을 요청하겠다는 것이다. A운용사 임원은 “소규모펀드끼리 합병시켜 봤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며 “투자 스타일이 비슷한 대형펀드와 합칠 수 있어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자(母子)형 펀드의 경우 자펀드 설정액이 50억원을 밑돌면 모펀드 규모와 관계없이 임의 해지할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다. 이 같은 방안이 받아들여지면 소규모펀드 수를 지금보다 20~30%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게 협회 측 추산이다. 신동준 금투협회 집합투자서비스본부 부장은 “소규모펀드 합병 규제가 완화되면 운용사들이 주력 펀드에 집중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투자자들의 평균 수익률도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당국은 다소 신중한 반응이다. 안창국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장은 “소규모펀드 수를 줄여야 한다는 건 맞는 방향”이라면서도 “소규모펀드와 대형펀드 간 합병특례의 경우 대형펀드 가입자들이 피해를 볼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