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제대로된 아파트 만들자"…34년 흑자행진 비결

50년 주택·건축·토목 등 건설 외길
양보다 질…도급순위 67위 强小기업
유비무환 내실 경영
IMF위기 2년 전에 몸집 줄여 극복
금융위기전엔 자체사업 줄이고 수주 주력
이윤은 사회에 환원해야
국가유공자 가옥 무료 수리
발전기금·장학금 등 나눔 실천
지난달 말 대전 유성구 ‘죽동 예미지 아파트’ 공사현장. 며칠간 지독한 감기에 시달린 정성욱 금성백조주택 회장(69)이 입에 마스크를 한 채 공사장에 나타났다. 현장 아침조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몸살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안전체조를 함께한 뒤 현장 직원과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완벽한 시공과 관리, 그리고 안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200명이 넘는 근로자와 일일이 악수할 때는 “회장님 감사합니다”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가난 때문에 13세 때 생업 전선에 뛰어든 뒤 ‘50년 건설 외길’을 걸어온 정 회장의 현장경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5세이던 1981년 금성백조주택을 설립, 충청권 2위(1위는 계룡건설산업)의 중견 건설사로 키워낸 것도 아파트만큼은 최고 품질로 짓겠다는 그의 고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자’는 좌우명처럼 그는 고향 대전 일대에서 기부왕으로도 잘 알려졌다. 정 회장은 회사에서의 본인 역할에 대해 “직원에게 좋은 근무 환경을 갖춰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0여년 건설업 한우물
충남 대덕군 회덕면(현 대전)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했다.
정 회장이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건 16세이던 1961년 목공사 일꾼이 되면서부터였다.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건축이론을 공부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다. 군(카투사)을 제대하고 결혼까지 한 뒤 28세 때 처음 중견 건설업체의 현장소장을 맡았다. 7년간 20여 곳 현장 경험을 쌓은 그는 창업에 나섰다. 1981년 2월 금성백조주택을 세웠다.
회사 설립 첫해에 대전 대화동에 금성백조빌라 27가구를 분양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만3000여가구의 아파트를 지었다. 34년간 주택 건축 토목 등 건설 외길을 걸었다. 회사는 창립 이래 줄곧 흑자 행진이다. 설립 이후 빚을 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시공능력평가(도급) 순위도 꾸준히 올라 올해 전국 1만2000여개 종합건설업체 중 67위를 기록했다.
아파트는 바르게 짓는다
정 회장은 “모든 주부가 원하는 아파트를 천천히, 그리고 제대로 지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빠르게가 아니라 바르게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로 총칭되는 속도가 미덕인 시대지만 정직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 철학이 묻어난다. 비스듬하게 멋을 부린 단지 조감도나 현장 사진은 다시 바르게 찍으라고 지시할 정도다. “지금까지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수요자에게도 아파트를 제대로 바르게 짓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정 회장은 “아파트만큼은 어느 주택업체에도 뒤지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설계사무소가 두 손을 들 정도로 품질과 설계 관련 회의가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수요자가 만족하는 아파트를 건설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관계자들이 매번 머리를 싸맨다. “수요자가 살고 싶은 집을 지었기 때문이겠죠. 충청권에서 금성백조와 예미지(브랜드명)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웃음)
명품 아파트에 쏟는 노력은 아파트 부지를 살 때부터 시작된다. 토지 계약을 하기 전 해당 부지를 주중, 주말, 낮, 밤 등 시간을 달리해 수십번 방문한다. 이렇게 해서 마음에 드는 땅을 산 뒤 주택 기계전기 토목 환경 등 분야별로 10여명의 내부 전문가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린다. 토지를 구입하는 기획 단계부터 설계 인허가 분양 착공 등 100여가지 항목을 일일이 분석한다. 꼼꼼한 입지 분석, 성실한 시장 조사와 수요 분석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34년간 한 번도 적자가 없었다
대전지역 주택업계에서 정 회장은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뛰어난 경영자로 알려졌다. 경기가 호황일 때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일 때 호황을 준비하는 자세로 회사를 이끌어 온 게 이 같은 평가 배경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기 2년 전 전반적인 경기 침체 조짐이 보이자 회사 몸집을 절반으로 줄였다. 외환위기 때 대형 업체가 잇달아 도산하는 상황에서 금성백조가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는 자체 사업 비중을 줄이고 수주 공사를 늘렸다. 주택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것보다 전략적으로 공공·민간공사 수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더불어 내부적인 체질 개선과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통해 경쟁력 확보에 주력했다. 34년 흑자 행진은 이렇게 이뤄졌다.
금성백조는 한 해에 두어 개 현장, 2000가구 안팎의 아파트를 공급한다. 중견 주택업체들이 1만가구 안팎의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과 비교하면 많지 않은 규모다. 무리하게 몸집을 불리기보다 소처럼 한 걸음씩, 대신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물론 재무구조와 수익성에 대한 기업경영분석 지표는 꼼꼼히 챙긴다. 정 회장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과도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내실을 키우며 임직원이 합심해 단결한 결과”라고 말했다.
깐깐한 회장님, 대전지역 기부왕
정 회장이 임직원과 회의를 할 땐 논제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직원에게 살아온 경험을 한 번이라도 더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다들 자식 같아 보여서 인생 선배로 조언하고 충고해 주는 겁니다. 임직원이 잘돼야 회사도 순탄하게 성장할 수 있잖아요.”
그는 대전의 발전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고 했다. 정 회장이 지역 경제계에서 존경받는 건 건실하게 회사를 이끌고 고용 창출에 기여할 뿐 아니라 지역민을 돕는 일에 솔선수범하기 때문이다. 국가유공자 가옥 무료 수리, 대전 시티즌 후원 등 지역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늘 앞장선다. 최근 대전 한밭대와 한남대에 각각 2억원과 1억원의 발전기금을 내놓았다. 법무보호복지공단 대전충남지부 보호위원연합회장으로 법무보호대상자(출소자)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평화의마을 아동복지센터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나눔 선행도 계속하고 있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지론이다. “대전과 금성백조 예미지를 사랑해준 시민에게 보답하는 길은 어려운 이웃과 늘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성욱 회장 프로필
△1946년 대전 출생 △1981년 금성백조주택 창립 △1998년 대한주택건설협회 대전·충남도회 회장 △1999년 동탑산업훈장 △2007년 대전시 푸른대전가꾸기 시민운동본부장 △2010년 대전시 개발위원회 제8대 회장 △2011년 충남대 명예 경영학 박사 △2012년~ 대한건설협회 대전시회 8대 회장 △2013년~ 대전상공회의소 21대 부회장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