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씨의 ‘공기청정기’.
김상진 씨의 ‘공기청정기’.
경기 이천에 있는 금호창작스튜디오는 화실 9개와 휴게실, 샤워실 등 생활공간을 갖춘 창작 지원 시설이다. 이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금호미술관은 만 40세 이하의 작가를 대상으로 공모해 1년 단위로 최대 2년까지 작업 공간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총 9기수 61명의 신진 작가가 이곳에서 작품 세계를 키워 나갔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이 다음달 22일까지 금호창작스튜디오 설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 ‘주목할 만한 시선’을 연다. 교수, 미술평론가, 학예연구사들이 지금까지 입주했던 작가 중 다시 한 번 주목할 만한 10명을 뽑았다. 송명진, 지희킴, 박상호, 정기훈, 송유림, 이재명, 유목연, 황수연, 김상진, 김수연 씨가 그들이다.

송명진 씨는 내장을 모티브로 한 회화 ‘느슨한 죽음’ 등을 선보인다. 캔버스에는 가로로 걸린 기다란 줄 위에 인체의 장기가 널려 있다. 하루, 이틀, 1년, 수십 년…. 몸통이란 공간 안에서 몸의 역사를 차곡차곡 새겨왔을 내장은 이제 시간 축 위에 순차적으로 재배열된다. 작품 제목은 죽음이지만, 캔버스 화면은 반대로 삶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살아간다는 것은 그 시간을 견뎌낸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지희킴 씨는 팝업북과 북 드로잉 작품을 전시한다. 그는 영국 골드스미스에서 유학할 당시 공공도서관에 직접 편지를 써 영문 학술서적을 기증받았다. 이렇게 모은 서적을 여러 권 쌓고 그 위에 패션잡지 속 백인 모델들의 사진을 오려 붙여 팝업북 형식으로 고정시켜 미(美)와 지(知)의 이분법적 충돌을 그린다.

김상진 씨는 설치작품 ‘공기청정기’를 통해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인식체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유리상자 안에 화려한 꽃이 심어져 있다. 유리상자 한쪽에는 공기청정기가 있다. 공기청정기는 향기와 냄새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자극적인 후각 요소를 제거한다. 공기청정기는 우리가 향기롭다고 믿는 꽃의 향기를 빨아들이고 꽃은 서서히 시들어간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가치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02)720-5114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