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위기의 리더' 류성룡 통해 본 임진왜란
1592년 임진년에 시작된 7년간의 전쟁은 조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한 영웅은 이순신이다. 이순신이 해상 전투에서 왜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면, 서애 류성룡은 군사와 외교 행정 등에서 두루 활약하며 나라를 구했다. 혼란에 빠진 조정을 수습하고 전세를 뒤집기 위해 노력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징비록’을 썼다. 다시는 이와 같은 참혹한 피해를 겪지 않기 위해 당시 일어난 일들을 냉정하게 회고했다.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은 ‘징비록’과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전쟁의 전후 사정을 다시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역사저술가인 저자는 7년 전쟁의 결정적 장면을 포착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류성룡은 단순히 이순신을 천거한 사람이 아니라 백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애쓴 인본주의자였다”고 말한다. 류성룡은 겉벼 2000석을 명군에 바치려 했으나 콩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1000석을 덜어 굶고 있는 백성에게 나눠주고, 사역에 동원되지 않은 백성은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 해도 임의로 전쟁터에 끌고 나가지 않았다.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그는 전쟁 막바지 명군과 왜가 강화를 맺으려 하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황제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결기를 보였다.

저자는 류성룡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의 정책과 ‘징비록’ 내용에 대해선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징비록엔 류성룡이 조총의 위력을 파악해 신립에게 경고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전쟁 전 쓰시마에서 진상한 조총은 바로 군기시(軍器寺)에 처박혔다”며 문신이 무신에게 무기의 위력을 경고했다는 기록에 의문을 제기한다. 적의 머리를 갖고 오면 신분을 따지지 않고 관직을 줬던 류성룡의 정책에 허점은 없었는지도 검증한다. 왜군은 근접전에 상당한 강점을 보였는데 정예군도 아닌 조선 일반 백성들이 줄줄이 들고 온 머리는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저자는 징비록 이후 광해군과 인조반정, 병자호란 직전까지 동아시아 정세의 전개 과정을 소개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란 두 번의 엄청난 전쟁을 치른 조선이 왜 다시 위기를 맞았는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