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살아서 편지를 주고받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하다못해 페이스북에서 지인들과 만나는 것도, 트위터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살아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처음 든 건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서울추모공원을 검색하다 ‘하늘 우체국’이라는 사이트를 발견한 뒤였다.

하늘 우체국은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들이 망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관리하는 사이버 공간이다. 부모에게, 아내에게, 드물게는 친구나 자식에게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편지들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작년 초여름 어머니와 함께 서른여덟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이장하기 전 유골함을 고르러 서울추모공원에 갔었다. 시끄러운 거리에서 터널 하나만 지나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들어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추모공원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울음소리가 거대한 건물을 휘감고 도는 회오리바람 소리처럼 들렸다. 사무실로 들어가 직원에게 저 소리가 울음소리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답했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늘 영동에 한 줌 흙으로 묻힌 외할아버지 유골을 가져다 새문안교회 묘지에 묻힌 외할머니의 유골과 함께 장호원에 있는 가족묘지에 합장하고 싶어 하셨다. 너무 일찍 사별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이제 와서 한 곳에 묻히고 싶어 하실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일은 산 사람들의 마음에 달렸을 뿐이다.

할아버지를 가족묘에 모신 다음날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동생을 화장하러 추모공원에 갔을 때, 그 회오리치는 울음소리는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우리는 왜 그렇게 먼 곳에 사랑하는 가족을 묻으러 가는 걸까. 예쁜 작은 항아리에 사랑하는 이의 유골을 담아 침대맡에 놓아두고 생전처럼 계속 대화를 나누면 안 되는 걸까.

쓰러질 것 같은 어머니를 돌봐야 할 나의 슬픔은 아직도 물을 주지 않아도 자라나는 다육식물 같다. 낮잠을 자다가도 동생이 나타나 품 안에 파고들며 어리광을 피운다. 왜인지 어머니 꿈에는 단 한 번도 찾아주지 않는다 한다. 동생은 죽어서도 효도하려고 그러나 보다. 서울추모공원 사이트의 하늘 우체국으로 들어가 동생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추운 날이다. 며칠 전 어머니는 너무 울어서 잘 안 보이는 오른쪽 눈 백내장 수술을 했노라고. 어머니 걱정은 누나한테 맡기고 편히 쉬라고.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