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철광석 광산 물려받아 미개발 광맥 찾아내 '대박'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여인
◆상속녀지만 자수성가한 경영인
라인하트는 2006년 순자산 18억호주달러(약 2조1000억원)로 억만장자 대열에 처음 합류했다. 2011년에는 자산이 103억호주달러로 불어나 호주 최고 부자 자리를 꿰찼다. 2012년 그의 자산은 292억호주달러(약 34조5000억원)로 1년 새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로써 지난 7년 동안 1위였던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의 상속녀 크리스티 월턴을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최고 여성 부자에 올랐다. 당시 영국 BBC 방송은 “조사기관에 따라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라인하트가 가장 부유한 여성이 됐다”며 “이제 세계는 그동안 덜 알려진 광산 거물을 주목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외동딸인 라인하트는 1992년 아버지 랭 핸콕의 사망 이후 ‘핸콕광산그룹’을 물려받아 38세의 나이에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그룹 회장이 됐다. 핸콕그룹은 1950년대 초 발견된 호주 서부의 대규모 철광석 광산을 보유한 광산업체였지만 그녀가 상속받았을 당시엔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시드니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후계자 수업을 받은 라인하트는 회장이 되자 개발하지 않은 광맥으로 과감하게 눈을 돌렸다. 글로벌 파트너들과 손잡고 조인트벤처를 세우거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광산 개발에 나섰다. 이를 통해 회사를 흑자로 돌려놨고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다. 라인하트는 “나는 자수성가한 경영자다. 상속녀로 불리는 걸 거부한다”고 강조한다. 그녀의 성공에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 과감한 시장개척 경영이 결정적이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운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롤 모델은 ‘철의 여인’ 대처
살찐 중년 여성의 평범한 외모를 가진 라인하트 회장은 진주목걸이를 즐겨 착용한다. 그를 그린 만평이나 캐리커처에도 항상 진주목걸이가 그려져 있다. BBC 방송은 “라인하트가 23세 때인 1977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만난 뒤 그를 영웅으로 삼았다”며 “진주목걸이를 즐겨 한 대처의 패션을 따라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션뿐 아니라 사상이나 사고체계도 대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시장 개입 최소화를 주장하며 ‘대처리즘의 교과서’로 불린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라인하트가 존경하는 또 다른 인물이다. 라인하트 회장은 다른 부자들처럼 예술이나 개인전용기 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일에만 매달려 휴일 없이 주 7일 근무하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개인 비서를 2명 두고 있는데 1명은 낮에, 다른 1명은 야간에 일한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투적 행동가’로 통한다. 평소 언론 등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던 라인하트 회장은 2010년 호주 노동당 정부가 광산업계에 탄소세와 수익세를 부과하려고 하자 처음 공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목에 치렁치렁한 진주목걸이를 하고 트럭의 짐칸으로 올라가 “세금을 폐지하라”며 반대 구호를 선창했다. 당시 현지 언론은 “라인하트가 주먹을 치켜들 때마다 손목에 달린 금팔찌가 번쩍였다”며 ‘억만장자의 시위’라고 꼬집기도 했다.
광산업에만 몰두하던 라인하트는 미디어산업에까지 손을 뻗쳐 파장을 일으켰다. 2012년 2월 페어팩스미디어그룹의 지분을 대거 사들이며 일약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 패어팩스는 호주 유력지 시드니모닝헤럴드, 디에이지를 비롯해 300개 신문, 15개 라디오 방송국을 보유한 호주 양대 미디어그룹 중 하나다.
◆구설수 끊이지 않아
라인하트 회장은 2012년 시드니에서 한 연설에서 “아프리카인은 하루 2달러 미만의 임금에도 기꺼이 일을 하고 있다”며 호주의 임금이 너무 높아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말해 비난을 받았다. 또 수차례에 걸쳐 호주 정부에 경쟁력 제고를 위해 최저임금을 낮춰야 한다고 건의해 근로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녀는 이전에도 “(부자가 되고 싶으면) 술 마시고 담배나 피워대지 말고 좀 더 많은 시간을 일하라”고 주장하는 칼럼을 써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라인하트는 이사회 의석 수, 편집권 독립 등을 둘러싸고 패어팩스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라인하트가 국가 정책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언론을 손에 넣고 있다”며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시드니 마이닝(mining·광산업) 헤럴드’가 될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돈 많은 재벌가에서 유산 상속 분쟁이 곧잘 빚어지는데 라인하트 회장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재산을 놓고 필리핀계 계모와 14년간 법정 다툼을 한 데 이어 자녀들과 분쟁을 벌였다. 라인하트는 이혼한 첫 남편 그레그 헤이워드와 사망한 두 번째 남편 프랭크 라인하트 사이에 총 1남3녀를 뒀다.
라인하트 회장의 아버지 핸콕은 1988년 라인하트 회장의 자녀이자 자신의 손자들을 위해 회사 지분 23%로 이뤄진 신탁기금을 만들어 딸인 라인하트에게 관리를 맡겼다. 막내 손녀 지니아가 25세 되는 2011년 9월 손자들에게 신탁재산을 넘겨주라는 게 핸콕의 유언이었다. 하지만 라인하트 회장은 2068년까지 신탁관리 기간을 연장했고 이에 대해 지니아를 제외한 세 자녀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법적 분쟁은 2013년 라인하트 회장이 더 이상 신탁기금의 관리인 자격을 원치 않는다고 포기하며 종지부를 찍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