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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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천자칼럼] 고갱](https://img.hankyung.com/photo/201502/AA.9577999.1.jpg)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는 화가 폴 고갱(1848~1903)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미학적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렸지만 고갱 일생의 줄거리는 잘 담겨 있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그린 벽화에 대한 느낌은 이렇게 섬뜩하게 묘사돼 있다.
자화상에 나타난 얼굴 모습 그대로 강렬한 색채를 실험했던 화가 고갱은 피카소 마티스 뭉크 등 20세기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대 초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결혼도 하고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작품 수집 취미로 미술을 접했다. 27세 무렵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와도 가까웠다. 둘은 그러나 어느 비평서 제목대로 ‘성난 고갱, 슬픈 고흐’였다. 전혀 성격이 달랐던 두 사람은 그림에 대한 생각이 달라 자주 다퉜고 화가 난 고흐가 스스로 자신의 귀까지 자르게 됐다. 그러나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고흐와 달리 고갱은 프랑스와 타히티를 오가며 화가로 살았다.
폴리네시아의 원시를 동경한 그는 타히티에서 테하마나라는 처녀와 동거하며 지낼 때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생활은 늘 곤궁했다. 가족들이 송금을 끊자 물감이 떨어졌고 그림색도 엷어졌다. 고갱은 이때 “고통이 너무 심할 때에는 천재성이 완전히 바닥나고 말 것이다”라고 자조했다고 한다. 유작을 남기겠다고 그린 그림이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였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갱은 “이 작품은 내가 지금껏 그린 것 중에서 최고이고 앞으로 더 잘 그릴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대작을 포함해 8작품을 판 돈은 1000프랑에 불과했다.
가난한 시절의 화가는 그렇게 갔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운명은 달랐다. 고갱이 1892년 그린 ‘언제 결혼하니?’가 3억달러(약 3272억원)에 팔려 역대 최고 판매가를 기록했다는 보도다. 마침 피카소의 손녀가 자신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미술품 1만여점을 팔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피카소의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고 하니 위대한 예술가 주변에 있으면 미학적 희생자가 된다는 느낌도 든다.
봄바람이 멀리서 불어오는 요즈음이다. 밀레 전시회도 열린다고 한다. 미술관 나들이 하기 좋은 주말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