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000건 넘는 사건 처리
110여명의 공무원들로 구성…불량 제수음식 업체 등 점검
700억대 불량 건강음료 사건서 '아줌마 수사관'이 결정적
대부업체 단속 등 영역 넓힐 것
잠시 후 화물탑차 한 대가 정육점에서 수백m 떨어진 창고 앞에 도착해 짐을 내리자 수사관들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몰래카메라가 내장된 안경을 꺼내 쓴 중년의 여성 수사관이 화물차 가까이 다가가 차에서 내리는 상자들을 지켜보고, 다른 팀원들은 차량으로 주위를 지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밤 12시가 다 된 시간, 작업을 마치고 창고에서 나온 정육점 사장이 외제차에 짐을 싣고 어디론가 향하자 수사관들도 따라붙었다. 차량을 운전하던 김태섭 수사관은 “아반떼로 엔진 출력이 두 배 이상 높은 고급 외제차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며 “추적을 눈치챈 상대방이 마구 속도를 올리는 바람에 아찔한 순간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근무는 정육점 사장의 귀가를 확인한 새벽 2시 무렵이 돼서야 끝났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잠복 근무를 하고 수백㎞가 넘는 거리를 차량으로 따라붙고, 각종 몰래카메라로 범행 현장을 촬영하는 공무원들이 있다. 경찰과 검찰, 국정원 등 수사기관 직원들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시 공무원과 구청 파견 공무원 110여명으로 꾸려진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과 수사관들이 그 주인공이다. 수사관 대부분이 6~8급 공무원인 이들은 700억원대 불량건강식품을 제조한 일당을 검거하는 등 식품안전과 불법의약품 유통 등 민생침해형 범죄의 해결사이다. 설 대목을 앞두고 활개를 치는 불량식품 제조업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이들의 24시를 살펴본다.
◆설 맞아 제사음식 배송업체 집중 점검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과는 식품안전과 불법의약품 유통, 환경오염 단속 등 민생침해형 범죄 해결을 위해 2008년 처음 창설됐다. 경찰과 검찰의 경우 강력 사건과 지능 범죄, 공안 사건 등 대규모 사건 수사에 주력할 수밖에 없어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민생 범죄 해결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가 쉽다는 판단에서였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시청과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일반직 공무원이더라도 관할 검사장이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으로 임명하면 법으로 규정된 특정 분야에 한해 경찰과 동일한 수사 업무를 할 수 있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과는 서울시 소속 공무원 46명과 25개 자치구에서 파견된 75명의 구청 소속 공무원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과는 이번 설을 앞두고 지난달 26일부터 오는 9일까지 집중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마다 대목을 노리고 불법 건강식품을 판매하고 유통기한과 원산지를 조작한 식품을 내놓는 업체들이 활개를 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설에는 인터넷으로 제수음식을 주문 받아 판매하는 업체 40여곳을 방문 점검하고 있다.
◆아줌마 공무원이 700억원대 사건 해결
특사경 업무에 종사하는 수사관들은 식품안전과 관련된 수사 과정을 퍼즐을 한 조각씩 맞춰나가는 과정에 비유한다. 불량 건강식품을 제조하고 수백t 규모로 식품의 원산지를 조작하는 이른바 ‘포대갈이’ 범죄 용의자 대부분이 이미 전에도 같은 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은 적이 있는 전과자들로 증거를 철저히 숨기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민생사법경찰과는 경찰서 두세 곳을 합친 것과 같은 수량의 첨단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안경형·볼펜형·열쇠고리형 몰래카메라는 물론 야간에도 현장을 관찰할 수 있는 적외선 망원경 등 각종 장비 300여종이다.
잠복 근무가 많은 업무 특성상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19대의 대여 차량도 석 달마다 모두 교체하고 있다. 픽업트럭 2대를 따로 보유해 경기 외곽 지역에 밀집한 건강식품 제조공장을 방문할 땐 의심을 사지 않도록 타고다닌다.
‘아줌마’ 수사관들은 증거 확보와 사건 해결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들이다. 남성 수사관이 접근할 땐 경계하며 공장에 들여보내주지 않는 제조업자들도 여성이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거나 상품을 구입하고 싶다고 하면 의심을 풀고 입을 열기 때문이다. 잠복 근무와 차량 미행을 할 때도 남성 수사관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을 경우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힘들지만 남녀가 나란히 앉아 있으면 유리하다는 게 수사관들의 설명이다. 최규해 민생사법경찰과장은 “2014년에 735억원 규모의 불량 산수유 음료를 제조한 일당을 적발했을 때도 7급 중년 여성 공무원이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면서 공장에 들어가 몰래 촬영한 증거 자료가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불법 대부업체 단속까지 수사권 확대
특사경을 통해 매년 1000여건의 민생침해범죄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시는 앞으로 특사경의 규모를 더 확대할 방침이다. 불법 대부업체와 다단계업체 단속 등 현재로선 행정처분에 그치고 있는 분야까지 직접 수사해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특사경의 직무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바로 정원을 늘려 특사경의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 특별사법경찰관
특별사법경찰관은 식품 및 환경 단속, 청소년 보호 업무 등 한정된 직무 범위 내에서 경찰과 동일하게 단속과 수사, 송치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일반직 공무원이다.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기관장이 제청하면 관할 지검장이 임명한다. 광역자치단체와 법무부, 국토교통부, 관세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서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