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혼 해결않곤 저출산 극복 어렵다"
정부가 앞으로 저출산 대책의 초점을 만혼(晩婚)을 줄이고 남성의 육아 참여를 늘리는 데 맞추기로 했다. 지난 10년간 무상보육 등 양적 지원에만 10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이 바닥을 치자 인구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 것이다.

◆“기존 인구정책은 실패했다”

정부는 6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1차 회의를 열고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16~2020년) 수립 방향을 논의했다. 그 결과 과거 10년간 펼쳐온 저출산 대책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결혼 연령 낮추기, 아동의 삶의 질 향상 등 질적인 구조개혁에 집중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무상보육 등 양적 팽창에만 치중해온 저출산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도 “과거의 틀에 갇혀 있다면 저출산·고령화가 몰고올 충격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본부장은 “그동안 정부가 펼쳐온 1~2차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학벌 위주의 취업시장과 사교육 문제, 장시간 근무가 일상화된 근로문화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단순히 보육료 지원에만 전체 예산의 80%를 쏟아왔다는 문제가 있었다”며 “3차 대책은 이와 달리 결혼 지원이나 일-가정 양립에 초점을 맞춰 짜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 연령 낮추는 게 핵심

정부는 2013년 1.19명까지 낮아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을 2020년 1.4명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결혼식 비용을 줄여주고, 신혼부부용 임대주택 공급 등을 확대해 주거부담을 완화시켜 결혼 연령부터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주택자금 대출금리도 신혼부부에겐 대폭 낮춰줄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늦게 결혼할수록 자녀를 출산할 여유기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만혼 추세를 완화시키지 않고선 저출산 극복이 어렵다”며 “만약 만혼 추세가 가속화되지 않았다면 한국의 출산율은 1.19명이 아니라 1.44명까지 올라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정부 연구 결과 31세가 되기 전 결혼한 여성은 평균 자녀 수가 2명이지만 35~39세에 결혼한 여성의 경우 0.8명에 그쳤다.

◆중소기업 출산휴가 현실화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현장에선 거의 먹혀들지 않고 있는 장기간 출산휴가 등 맞벌이 부부 지원정책도 대폭 손보기로 했다. 지금은 휴직이 사실상 불가능한 중소기업 근로자도 얼마든지 육아휴직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당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워킹맘의 81.9%가 상사 눈치와 인사 불이익 등을 우려해 육아휴직을 내고서도 불안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 중 98%는 육아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30~99인 기업의 경우 운영률이 41%로 떨어진다.

여성에게만 쏠려 있는 육아부담을 남성과 나누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한국 남성의 육아참여율은 24시간 중 49분에 불과해 두 시간이 넘는 선진국 남성 육아참여율에 비해 낮다. 정부는 남성의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전업주부 위주로 지원되는 현행 보육료 지원체계도 전면 개편해 맞벌이 부부 지원을 확대한다.

아이를 낳고 싶은 데도 낳지 못하고 있는 난임부부 20만명에 대한 지원도 확대되고 동거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의 아동도 차별을 받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너무 늦었나

정부는 3월에 핵심과제를 선정한 뒤 최종 계획안을 9월에 내놓겠다고 설명했다. 신혼부부 주거부담 경감, 육아휴직 활성화 등 기본방향은 잡았지만 구체적인 대상과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는 것. 막대한 재정부담 때문에 구체적인 대책은 아직도 저울질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소요 재정에 대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늘리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당장 노인 숫자가 급속도로 늘고, 일할 수 있는 젊은 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가 느긋한 대처로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초 이 위원회도 지난해 초 열릴 계획이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박 대통령 집권 3년차에야 겨우 개최됐다. 정부가 뒤늦게 인구정책 방향을 발표했지만 효과를 내기엔 이미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병욱/고은이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