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감 넘치는 군무에 객석 열광…배우·관객 짜릿한 호흡
"하얼빈이 한국 뮤지컬의 中 진출 전진 기지"…4월 서울 공연
오후 4시50분. 개막을 두 시간여 앞두고 공연장인 하얼빈 환추극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영웅’을 제작·연출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2009년 초연 때부터 꿈꾸던 하얼빈 공연이 하얼빈시 당국의 초청장 발급 지연과 제작비 조달의 어려움 등 수많은 난관을 뚫고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대형(40피트) 컨테이너 5개 분량의 무대세트와 음향 장비를 한국에서 배로 실어왔다”며 “배우, 스태프 등 공연팀 100여명이 총출동했다”고 설명했다. 7일 1회, 8일 2회 등 총 3회 하얼빈 공연에 들인 제작비는 3억5000만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가 이 중 60%가량을 지원했다.
오후 7시10분. 1600석 규모의 극장이 거의 다 들어찼다. 대부분 중국인 관객이었다. 한국어로 공연하고 중국어 자막이 뜨는 무대다. 자작나무 숲에서 안중근 등 독립의사 12명이 단지 동맹을 결의하는 첫 장면이 역동적으로 펼쳐지자 다소 어수선하던 객석은 차츰 무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독립투사와 일본 경찰의 쫓고 쫓기는 장면, 배우들의 박진감 넘치는 군무가 현란한 무대 전환과 영상으로 펼쳐지자 박수만 치던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안중근 의사의 중국인 조력자인 왕웨이·링링 남매가 일부 대사를 중국어로 말하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왕웨이가 의리를 지키다 일본 경찰에 목숨을 잃는 장면에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 대표가 초연 때부터 중국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중국인 등장인물이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였다.
무대의 감정에 동화된 듯한 관객의 호흡은 하얼빈역 저격 장면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토를 겨냥한 일곱 발의 총성이 쏘아지는 순간 관객들은 모두 숨을 멈춘 듯했다. 잠시 후 “대한독립 만세”를 연호하는 안중근 의사의 외침에 정적이 흐르던 객석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오후 9시50분.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앞두고 “나 이 땅에 장부로 태어나~”로 시작되는 ‘영웅’의 대표곡 ‘장부가’를 부르며 막이 내렸다. 커튼콜이 시작되자 중국인 관객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중국어 교사인 멍셩아이(31·여)는 “한국 배우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표현에 자세히 몰랐던 안중근 의사를 깊이 이해하게 됐고,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무대에 감동받았다”며 “이렇게 수준 높은 뮤지컬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류싱밍 하얼빈시 부비서장은 “예술적·문화적·역사적으로 훌륭하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양국 간 문화 교류가 촉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문 뮤지컬 극장이 아니어서 공연장 환경이 열악했음에도 무대의 완성도는 서울 공연 못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무대 시설의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았다. 강태을은 “역사적 장소에서 하다 보니 감정이 북받쳐 서울 공연보다 훨씬 많이 울었다”며 “모든 배우들이 더 깊은 감정으로 더 열심히 하는 것을 무대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소녀 링링 역을 열연해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배우 이수빈은 “중국어 발음을 정말 열심히 연습해 익혔다”며 “예상을 뛰어넘는 중국인 관객들의 환호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배우들에게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하던 정신으로 처절하게 연습해서 중국인들에게 과거 독립투사의 정신을 보여주자고 했다”며 “안중근 의사의 업적이 이번 공연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중국 땅에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다른 도시에서도 ‘영웅’ 공연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하얼빈이 한국 뮤지컬의 중국 진출에 좋은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웅’은 오는 4월14일~5월31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안중근 의사 역은 강태을과 정성화가 번갈아 맡는다.
하얼빈=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