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로스앤젤레스(LA) 한의학 전문대학원이 개교 20주년을 맞았다. 동국대 서울캠퍼스에서 만난 황민섭 LA캠퍼스 총장은 “한의학 서적 번역, 학생 교류 프로그램 강화 등을 통해 한의학을 미국에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동국대 로스앤젤레스(LA) 한의학 전문대학원이 개교 20주년을 맞았다. 동국대 서울캠퍼스에서 만난 황민섭 LA캠퍼스 총장은 “한의학 서적 번역, 학생 교류 프로그램 강화 등을 통해 한의학을 미국에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는 동국대가 운영하는 한의학 전문대학원(DULA)이 있다. 미국 로열 한의과대학을 1996년 인수한 동국대는 이곳을 한의학 전문대학원 LA캠퍼스로 운영 중이다. 국내 한의대 가운데 처음 미국에 진출한 것이다.

황민섭 동국대 LA캠퍼스 총장은 지난달 대한상한금궤의학회 등과 한의서 번역사업 등을 진행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에서 한방 치료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한의사에게 영상진단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 의사와 한의사들이 다투는 것에 대해서는 “환자에게 무엇이 이로운 방식인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국대가 미국에 진출한 지 20년이 됐습니다.

“한국 한의학을 알리기 위해 로열 한의과대학을 인수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침구학 중심의 중의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동국대 LA캠퍼스는 연방교육부의 위임을 받아 설립된 미국 한의과대학인증위원회(ACAOM) 인증을 받았습니다. 졸업생들에게는 전국 한의사 면허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한의학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은 어떻습니까.

“미국에서는 한의사가 침구사로 불리며 보조치료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사들은 침이나 뜸 치료 같은 한방 치료의 효능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침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오바마케어(미국 건강보험)가 시행되면서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는 침술 치료를 ‘필수건강혜택(EHB)’에 포함했습니다. 통증 등을 치료하기 위한 침술 치료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국립보완대체의학센터(NCCAM)를 통해 수억달러의 연구비를 제공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한방 연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미국에서 한의학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으로 봅니다.”

▷‘의사’라는 말은 쓰지 못하나요.

“주마다 다릅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에서는 한의대를 졸업하고 박사 과정을 이수하면 ‘의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의대 석사 과정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은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 또는 일반 대학에서 최소 60학점을 평균 평점 2.25 이상’으로 이수해야 합니다. 한의대를 졸업하려면 환자 200명의 진료를 관찰하고, 350명의 환자를 직접 진단·치료하는 인턴십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면허 시험도 치러야 합니다. 한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의사가 많습니까.

“3만5000명 정도 됩니다. 대부분 캘리포니아, 뉴욕, 플로리다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인구 3억명의 5%인 150만명 정도만 한방 치료를 받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죠. 영어로 의사소통이 된다면 미국에 진출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의료시장에 융·복합 바람이 불면서 다양한 치료법을 함께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중국 중의학은 요즘 어떻습니까.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중의학을 띄우고 있습니다. 전 세계 화교들을 중심으로 중의학의 세계화를 꿈꾸고 있어요. 교재 대부분이 중의학 책일 정도로 영문 번역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한의학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의학의 세계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도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의료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의학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중의학에서는 보통 침을 놓을 때 아픈 부위에 놓습니다. 한의학은 아픈 부위가 아닌 손이나 발에 놓는 고유의 침법이 있습니다. ‘사암침법’이라 부릅니다. 손끝에서 팔꿈치 아래까지의 혈(穴)과 발가락에서 무릎 아래까지 혈만을 이용하는 독특한 침법입니다. 개인의 체질에 따라 치료하고 약을 처방하는 ‘체질의학’도 한국만의 것입니다.”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편견도 있습니다.

“효능을 입증할 때 환자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검사해서 데이터를 내놓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의학에서도 논문을 활발하게 내놓고 있습니다만 아직 부족합니다.”

▷국내 한의학계의 숙원인 한의학의 글로벌화는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한의학의 과학화와 근거 중심의 한의학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침술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고 1970년부터 1997년까지 발표된 관련 논문 2302개를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 성인의 수술 후, 그리고 화학요법 치료 후 발생하는 오심과 구토, 치아 수술 후 통증에서만 침술의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또 약물 중독, 뇌졸중, 두통, 생리통, 테니스 앨보, 섬유조직염, 근막통증, 퇴행성 관절염, 요통, 수근관 증후군, 천식 등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과학적 방식으로 검증할 수 있는 부분을 치밀하게 수행해야 세계화 및 대중화의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DULA는 박사 과정 학생들과 침술 치료를 비롯한 한의학의 효과를 임상 논문과 문헌 자료의 분석을 통해 논문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한국 한의대와 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뤄질 때, 한의학의 위상 제고와 세계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LA캠퍼스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요.

“교수가 30여명이고 석사 과정에 170여명, 박사 과정에 90여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영어, 한국어, 중국어 과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아닌 학생이 60% 정도입니다. 한국에서 유학오는 학생도 많습니다.”

▷졸업생들의 진로는 다양합니까.

“한의원을 개원하거나 대형 병원에 취업합니다. 경쟁률 300 대 1을 뚫고 LA 대형병원인 카이저병원에 들어간 졸업생도 있습니다. 박사 과정에 진학하거나 의료 선교 활동에 나서는 졸업생도 있습니다. 한의원을 개원하는 비율은 60% 정도입니다. LA의 할리우드, 베벌리힐스, 오렌지카운티 등은 물론 중남미까지 진출해 있습니다.”

황민섭 총장은…

황민섭 총장(45)은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동국대 교수가 됐다. 2009년 동국대 경주한방병원장을 지낸 황 총장은 이듬해 동국대 LA캠퍼스 교수로 부임했고 지난해 총장에 선임됐다.

황 총장이 한의학에 뜻을 둔 것은 한의사였던 외삼촌의 영향이 컸다. 외삼촌은 그에게 “한의학은 질병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의학”이라며 한의대 입학을 권했다고 한다. 황 총장은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한 뒤 한의원을 열지 않고 학교에 남았다. 지속적인 연구와 후학 양성을 위해서였다. 황 총장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얻은 경험을 학생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황 총장의 전문 분야는 침술이다. 침구과 전문의가 된 뒤 정형외과 치료에 관심을 뒀다. 침술을 통한 체형 교정 연구에 집중했다. 동국대 LA캠퍼스에서는 체형교정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1971년 경북 포항 출생 △1990년 포항고 졸업 △1996년 동국대 한의대 졸업 △2002년 동국대 한의대 석사 △2003년 침구과 전문의 △2004년 동국대 한의대 교수 △2006년 동국대 한의대 박사 △2009년 동국대 경주한방병원장 △2014년 동국대 LA캠퍼스 총장

조미현/이준혁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