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폭발력 커진 가계부채 뇌관 뽑으려면
은행 주택관련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6조9000억원씩 늘던 은행 가계대출은 지난해 12월에도 6조6000억원 증가했다. 이 중 주택관련대출은 10월 6조원, 11월 5조9000억원 늘던 것이 12월에는 6조2000억원 증가해 증가 폭이 확대됐다.

문제는 당초 기대했던 긍정적 효과는 뚜렷하지 않은 반면 우려스러운 부분들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은행권에 비해 은행권에 낮게 적용되던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지난해 8월 이후 업권 구분 없이 일괄 상향 조정되면서 당초 기대했던 효과는 ‘가계의 대출 갈아타기’였다. 고금리의 비은행권 대출이 저금리의 은행권 대출로 전환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은행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비은행권 가계대출 역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은행권에 비해 경쟁력이 약화된 주택담보대출 이외의 가계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대목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가계의 부족한 생계비 충당 또는 자영업자들의 사업자금 등으로 쓰이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는 점이다. 이는 늘어나는 주택담보대출 중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채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부동산 관련 금융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주택시장 활성화 효과가 그만큼 반감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최근 가계부채가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8월 이후 중소득계층 및 고소득계층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2배 정도 빨라진 반면 저소득층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는 5배 이상 빨라졌다.

향후 가계부채 상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일시상환대출 규모는 49조1000억원에 달한다. 또 한국은행 조사에 의하면 가계부채 급증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은행들이 이미 추가적인 가계대출에 보다 신중을 기하겠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는 변동금리부 일시상환대출을 고정금리부 장기균등분할상환대출로 전환하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여전히 시중금리 상승세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바람대로 대출을 갈아타는 가계가 얼마나 될지 불분명하다. 번번이 만기 연장을 통해 부채 원금 갚기를 미뤄 온 가계가 과연 이제부터라도 부채 원금을 갚으려 할 것인지, 현재 가계의 상황이 이런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변수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전세자금 대출이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세입자들의 전세자금 관련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세자금대출의 증가 속도는 전체 은행 가계대출의 2.5배에 달했다.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고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 가계의 소비 여력이 위축된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반기 이후에는 우리 시중금리도 상승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향후 대출 원리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는 가계가 늘고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 등 부실화된 가계부채의 처리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총량적인 면에서 인위적으로 가계부채 규모를 줄이려 한다면 가계의 고통과 부작용이 매우 커질 수 있다. 늘어나는 가계 부채 내용을 들여다보고 가계부채의 질을 제고함과 동시에 취업 및 창업 지원 등 소득 증가 대책을 병행해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을 지속적으로 제고시켜 나가는 중장기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

조영무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choym@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