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가득한 웅덩이에 넣으면
'밑빠진 독'에도 물 채울 수 있어
영업은 고객의 바다에 몸 던져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사진)이 지난 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300여명의 최고경영자(CEO)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외환위기 당시 부도 위기에 몰린 회사를 물려받아 10여년 만에 업계를 선도하는 보험사로 탈바꿈시킨 노하우를 듣기 위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최고경영자 연찬회’ 강사로 초빙한 자리에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변화혁신’을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신 회장은 회사 성장의 핵심요소로 ‘비전 설정과 공유’를 꼽았다. “비전은 오케스트라 악보와 같은 것입니다. 악보가 없다면 단원들이 지휘자만 쳐다보고, 연주는 뒤죽박죽이 될 겁니다. 황제 경영의 폐해도 그런 것입니다.”
비전 공유를 위해서는 감성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사람은 누구나 강요받기 싫어하는 ‘정신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조직원들의 마음으로부터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비전도 소용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치만을 앞세워 직원들을 압박하고 마음에 상처를 안기기보다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공감의 형성 여부가 회사의 명운을 좌우한다고 덧붙였다. “몇 년 전 광우병 사태 때 지도층들이 가족과 설렁탕집을 찾아 한 그릇씩 뚝딱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바로 진정되지 않았을까요. 논리적인 설득보다 비언어적 소통의 힘이 더 큰 법이죠.”
영업도 마찬가지라는 게 신 회장의 신념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했다. “아무리 빠르게 물을 부어도 다 빠져나가고 맙니다. 방법은 하나뿐이죠. 웅덩이에 항아리를 던지면 깨진 틈에서도 물이 밀려 들어와 금방 채워집니다.”
영업의 본질도 그렇게 고객의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실적은 아등바등 채우려고만 하면 빠지고, 고객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가지면 어느 새 뒤따라 온다는 설명이다. 교보생명이 ‘평생든든 서비스’를 강조하는 것도 그런 생각에서라고 말했다. 그는 “애플이 요즘 입이 쩍 벌어질 만큼의 이익을 내는 것도 ‘사용자 편의’만을 파고든 스티브 잡스의 남다른 집념에 대한 보상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신 회장의 이날 강연은 사흘 동안 열린 경총 연찬회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강연으로, CEO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웬만해선 나서지 않는 ‘오너 기업인’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해진 데다 회사를 환골탈태시킨 과정이 ‘케이스 스터디’처럼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말씀 드린 생각과 기업문화를 교보생명이 빈틈 없이 실천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남들보다 좀 더 노력 중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멘트를 차분한 목소리로 끝낸 신 회장이 강연장 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참석자들의 큰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