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 떴다…'제2명동' 변신하는 가로수길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젊은 중국 여성 4~5명이 LG생활건강의 발효 화장품 브랜드 숨 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 점포의 매출 중 80% 정도는 중국인 관광객(유커)에 힘입은 것이다. 인근에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편집매장 아리따움에서도 유커들이 쇼핑을 하고 있었다. 아리따움은 개점한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월 매출이 1억3000만원대에 이르고 있으며, 이 중 유커의 비중은 40%나 된다.

가로수길이 ‘제2의 명동’으로 변신하고 있다. 1980년대 화랑의 거리, 1990년대 패션의 거리, 2000년대 편집매장 집결지를 거쳐 최근 유커들의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서울연구원의 조사 결과 가로수길은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10대 쇼핑 명소에 처음으로 들었다.

가로수길은 평일 오전에도 유커들로 북적이고 있다. 소형 의류 매장에서도 중국 인롄카드를 받는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가로수길을 찾는 유커들은 명동의 유커들처럼 선물용 저가 화장품을 세트로 사지 않고 본인이 직접 쓸 중고가 화장품을 단품으로 여러 개 구입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선호하는 국산 화장품 브랜드는 아직 중국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천연 화장품들이다. LG생활건강의 비욘드는 한류 스타인 모델 김수현 효과로 유커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가로수길에서 영업 중인 LG생활건강 계열 화장품 브랜드만도 더페이스샵, 빌리프, VDL, 비욘드, 숨 등 5개다. 3월에는 면세점 1위 화장품 브랜드인 후 매장이 추가로 문을 연다.

호주의 이솝, 영국의 닐스야드레머디스 매장에도 유커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솝 관계자는 “유커들이 세이지 오일로 만든 두피각질 전용 샴푸(500mL·6만5000원)를 배낭에 4~5개씩 넣어서 간다”고 말했다. 이 외에 록시땅 러쉬 멜비타 바디샵 키엘처럼 천연 원료를 강조하는 브랜드들도 최근 몇 년 동안 가로수길에 자리 잡았다.

유커들은 중국에 진출하지 않은 토종 색조 화장품도 즐겨 찾는다. 아모레퍼시픽의 에스쁘아는 유커 매출 비중이 45%에 이른다. 의류로 시작한 스타일난다도 유커들 사이에서 화장품이 큰 인기를 얻자 연내 가로수길에 대형 화장품 매장을 열 예정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들도 가로수길에 속속 들어오고 있다. 올해 대형 매장을 여는 폴로랄프로렌을 포함해 띠어리·자라(2012년), MCM·캐스키드슨·H&M·쌤소나이트레드(2013년), 라코스테·스와치·타미힐피거(2014년) 등 최근 3년 동안 가로수길에 들어온 해외 의류·잡화 브랜드만 10개가 넘는다. 한 의류 업계 관계자는 “가로수길은 서울의 유행에 가장 민감한 곳 중 하나”라며 “쇼핑할 곳뿐 아니라 맛집도 많고 강남의 성형외과들도 가까이 있어 이곳을 찾는 유커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