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저유가를 경제회복 디딤돌 삼으려면
1%대에 머물던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0%대로 내려온 지 두 달째다. 현재의 저물가 장기화 기조가 일본의 장기침체를 답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있다. 고령화와 내수침체는 일본과 비슷하나 한국은 부동산 버블을 겪지 않았고 최근의 저물가는 국제유가 하락 등 외부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실제로 원유와 농산물 가격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율은 5개월 만에 2%대로 오르면서 상승폭을 넓혔다.

물가상승률이 본격적으로 마이너스대에 진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국제 원자재가격 하락이 저물가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수준으로 100달러를 웃돌던 지난해 6월에 비해 절반 가까이 내렸다. 유가의 급락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엇박자가 났기 때문이다. 수요 측면에서 개발도상국들의 성장률이 둔화돼 원유수요가 급감했고 공급 측면에서는 작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생산량 감산 합의에 실패했다.

한국은 석유의존도가 높고 산업구조상 유가하락은 생산비용의 하락을 의미해 큰 호재가 될 수 있다. 유가가 현재 가격의 10% 범위에서 움직인다면 석유를 수입하는 아시아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0.6%포인트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유가하락이 빛을 발하려면 다른 요건도 뒷받침돼야 하는데 상황은 녹록지 않다. 소득불균형 심화, 빠른 고령화, 일자리 창출 둔화 등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소비를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 부족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상수지 흑자 소식이 달갑지 않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액은 894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지만 수출 증가율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았다. 수출 증가보다 내수 부진에 따른 수입 감소가 더 큰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다.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이 수입액을 감소시킨 가격효과도 있지만 수출증가율이 전년도에 비해 저조했던 점과 내수위축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저유가는 한국에 ‘달지 않은 기회’다. 생산비 절감 차원에서는 호재지만 그것이 경기회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구조적 취약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유가가 10% 하락할 때 제조업의 생산비 감소효과는 한국이 1%로 일본(0.6%), 중국(0.5%)보다 높다. 그만큼 저유가가 한국에 유리한 조건이다. 가계 입장에서도 유가하락은 실질구매력을 높인다. 그러나 고용위축, 부동산대출규제 완화로 인한 가계부채 증가 등이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저유가가 만드는 선순환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소득양극화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근로소득연말정산과 건강보험료 개편안 백지화를 두고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는 것은 양극화 심화를 방증한다.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이런 정책 혼란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사회갈등만 깊어지게 하고 있다.

정부는 경기침체와 저유가 속에 드러난 문제점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유가하락을 체감할 수 있도록 물가구조를 조정하는 한편 가계소비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용을 늘리는 것이 첫 번째다. 가계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70%에 달하고 이는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커진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세금징수에 불만이 없도록 합리적인 세제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 많이 벌수록 많이 내는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조세저항을 줄이고 세수를 확대하는 첫걸음이다.

선순환 고리는 한 번에 형성되지 않는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기업에 경제 개선심리를 심어주면 물가는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나 안정궤도에 들어가고 저유가는 경제회복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조하현 < 연세대 교수·경제학 hahyunjo@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