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수 "무명 13년 '버티자' 생각뿐…연기 빼면 죽은 목숨이죠"
한국 영화는 그가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양분된다는 말이 있다. 누적관객 1000만명 이상 모은 ‘도둑들’ ‘7번방의 선물’ ‘변호인’에 이어 상영 중인 흥행작 ‘국제시장’(지난 8일까지 1312만명)에서도 그는 황정민의 유쾌한 친구로 등장한다. 한국 최고의 조역으로 불리는 오달수(47·사진)는 40편에 출연해 누적 관객 수 1억700만명을 기록했다. 1억명 돌파는 현역 배우로는 유일하다. 11일 개봉하는 ‘조선명탐정:사라진 놉(노비)의 딸’에서도 김명민의 조수 격인 서필 역을 해냈다. 9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관객 1억명 돌파는 재미있는 사건이죠. 대단하지는 않지만 얘깃거리가 되니까요. 한국 영화를 사랑해주신 관객에게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1억명을 돌파한 비결을 묻자 그는 “오랜 기간 연극 무대에서 ‘버티는 힘’을 배운 덕분”이라고 답했다. 1990년 이윤택의 연극 ‘오구’로 데뷔한 뒤 2003년 두 번째 영화 ‘올드보이’의 조역으로 뜨기까지 13년간 배고픔을 참고 견뎌냈다.

“데뷔작 ‘오구’에서는 상갓집에서 술 마시고 화투 치는 문상객 1번 역이었죠. 1시간30분간 무대 에 앉아서 가끔 뜬금없는 대사를 하는, 별 볼 일 없는 배역이었죠. 그러나 맥을 놓아버리면 그 역은 죽어버립니다. 배역이 점점 커지면서 나중에는 상주 역까지 했지요. 연극판에서 버텨내니까, 영화 촬영장에서 겪는 난관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요즘도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버텨보라고 말합니다. 못 버티면 죽는다고….”

그는 여러 감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이유에 대해 “고집쟁이끼리 만난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은 연극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면서 고집을 키웠고, 감독은 나름의 고집으로 유명한 직군이라고. “감독들은 배우의 연기력 보다는 정신 자세를 봅니다. 저는 연기를 빼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달수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유쾌함이다. ‘국제시장’에서 독일 여자를 꼬시기 위해 춤추는 모습은 관객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악역으로 나와도 진짜 나쁜 놈 같지 않다.

“제 얼굴을 보자마자 관객들이 웃는다면 축복이죠. 부모님께 감사드려야겠지요.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지만, 악역에도 연민이 있습니다.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아요. 제가 유쾌한 연기를 하는 것은 관객들이 좋아하기 때문이죠. 저는 오직 관객을 위해 연기합니다. 관객들이 지겹다고 다른 이미지를 원하면 얼마든지 바꿀 겁니다.”

‘국제시장’이 흥행에 성공한 비결을 물었다.

“이 영화의 화두는 만남입니다. 그리워하다 만났을 때 감정이 얼마나 북받쳐 오를까요. 만남과 헤어짐에서 기쁨과 슬픔 등 많은 정서들이 파생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포인트는 약간씩 다를 겁니다.”

불량 은괴를 유통하고, 어린 소녀들을 납치한 범인들을 추적하는 내용의 ‘조선명탐정’은 설 연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문학적인 수사는 안 떠오르지만, 즐겁고 신나게 볼 수 있는 영화예요. 슬픔도 있지만요. 탐정 역 김명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올 겁니다. 망가지는 삼마이 연기를 정말 잘한다고 칭찬하자 자신도 무명 시절을 오래 겪었다고 하더군요.”

오달수는 서울 충무로에서 소문난 애주가다.

“술을 즐기는 편이지, 사랑하는 것은 아니에요. 사랑하면 죽죠. 사람이 술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요. 조지훈 선생은 술을 마시는 경지를 초급부터 10급, 1단부터 10단까지 20단계로 나눴는데, 저는 이제 급을 면할 정도예요. 그런데 제가 술 먹는 기사가 뜨면 어머니가 슬퍼하세요.”

그는 술자리에서 소주는 마시지 않고, 막걸리를 두 병 정도 마신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밥 대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