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저성장·저물가, 저출산·고령화, 성장동력의 약화, 잠재성장률 하락….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들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에게 익숙한 ‘골든타임(golden time)’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필요한 금쪽 같은 한계 시간을 말한다. 정부는 지금이 한국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골든타임은 단기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저성장을 탈피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일본식 장기 불황과 금리 하락

[채권 전망과 투자전략] 韓銀, 대외 불확실성에 올해 금리동결 전망…채권 수급여건 우호적…신규 투자 수요 클 듯
한국 경제는 수출입 구조나 인구구조 등 여러 측면에서 일본과 비슷하다. 일본이 겪고 있는 장기 불황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큰 배경이다.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저성장·저물가를 오랫동안 경험했다. 1980년대 연평균 4.6%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 1.1%로 떨어진 뒤 2000년대 들어 0%대 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역시 1980년대 연 2.1%에서 1990년대 0.8%, 2000년대 -0.3%, 2010년대 0.7%로 각각 낮아졌다.

1990년대 연 6.6%에 달하던 한국 경제의 성장률 역시 2000년대 4.4%로 떨어졌다. 2010년대 들어선 연 3.2% 수준이다. 일본보다는 덜하지만 성장 속도가 빠르게 감속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90년대 연 5.1%에서 2000년대 3.2%, 2010년대 2.2%로 꾸준히 낮아졌고 최근에는 0%대다. 디플레이션 논란마저 한창 진행 중이다.

일본에선 금리 역시 장기 불황 후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1995년 4월 연 3%대에서 1997년 10월 1%대로 떨어졌다. 한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2011년 8월 3%대에서 2012년 10월 2%대로 낮아졌다. 14개월 만에 1%포인트 하락했다. 일본 금리가 2%포인트 하락하는 데 30개월 걸린 것과 비교하면 장기 금리 하락 속도가 더 가파르다고 볼 수 있다. 장기 금리는 해당 국가의 장기 기대수익률을 반영하는 명목지표다. 금리 하락 속도가 빠르다는 건 그만큼 장기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 낮다

가파른 장기 금리 하락 추세에는 한국의 인구와 산업구조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쉽게 벗어나기 힘든 문제라는 뜻이다. 대외 불확실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올해 채권시장 흐름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경제, 통화정책, 수급, 대외 변수 등 주변 여건을 다양하게 점검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은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그 결과 기준금리는 연 2%로 사상 최저치다. 경기회복세가 뚜렷하지 않고 글로벌 불확실성에 따른 성장 하방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저물가가 계속되고 있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유럽중앙은행(ECB)발 글로벌 통화전쟁이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점도 통화당국을 부담스럽게 할 수 있다.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방어 압력까지 높아지고 있어 금리 인하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추가 금리 인하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 빠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 등을 감안할 때 당국은 금리 인하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통화당국은 환율 변화를 막기 위해 정책금리를 조절하는 데 부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3.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연초 예상했던 3%대 후반에 훨씬 못 미치는 부진한 결과다. 경기 회복의 뚜렷한 신호가 나타나지 않았고, 글로벌 경기 부진 등으로 성장 둔화 압력이 커졌다.

한국 경제는 올해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잠재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인 3% 중·후반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속된 정부의 경기 부양 노력, 두 차례의 정책금리 인하, 유로존을 비롯한 주요국의 양적 완화 등이 시차를 두고 국내 및 글로벌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 경제 성장률은 올 1분기를 저점으로 점차 개선될 것이며, 내수가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추가 금리 인하 여부는 한국은행의 경제 전망이 발표되는 4월 이후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4월 발표되는 한국은행의 경제 전망이 연초 예상과 부합할 경우 통화당국은 금리를 추가 인하하지 않고 올해 계속 동결할 것으로 판단된다.

채권 수급 여건은 우호적

수급 여건만 놓고 보면 채권시장에 우호적인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공급 측면에서는 공사채의 부족이 예상된다. 수요 측면에서는 보험권의 신규 채권 매수 여력이 35조원, 국민연금의 매수 여력이 19조원 정도다.

본사가 추정하는 연간 채권 공급 증가폭(80조원)의 상당 부분을 소화해 줄 수 있는 물량이다.

변수도 있다.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과 그에 따른 외국인의 원화채권 매도 가능성, 금리 상승 때 나타날 수 있는 ‘수급꼬임’ 현상이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올 상반기까지는 금리 인하 압력이 높은 반면 하반기엔 미국의 금리 인상 논란 및 주요국 경기부양책 효과 등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현상이 약화될 전망이다.

연간 전체로는 금리 상승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올해 1분기 말에서 2분기 초 사이는 시장금리 하락과 상승의 중요한 기로가 될 것이다. 이에 맞춰 채권 투자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박혁수 < 대신경제연구소 팀장 bondpark@daish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