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복지숙려기간을 둬야 하는 이유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필자도 혜택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혜택을 받아야 할 만큼 낮은 소득계층에 속하나 하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 불편함은 주어진 혜택의 달콤함으로 너무나 쉽게 대체됐고, 예산부족으로 무상지원이 폐지될지 모른다는 뉴스에 화를 내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공짜 복지는 없다고,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미래의 국가경제에 절대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던 필자가 무늬만 공짜인 복지의 달콤함에 포획된 것이다. 복지가 이런 것이다.

복지 확대가 시대적 소명이더라도 능력에 맞지 않는 복지 확대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들처럼 우리도 재정위기라는, 오르지 않아야 할 산을 올라가야만 하는가. 지혜로운 정부와 책임감 있는 국회라면 이런 위기를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깨어 있는 국민이라면 지혜롭지 못한 정부와 무책임한 국회의 정책들에 대해 꼭 필요한 정책인지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를 냉정히 따져 물을 것이다.

현재의 ‘복지 대 증세’ 논란은 무상시리즈가 시행되기 이전에 보다 더 뜨겁게 진행됐어야 했다. 과거에도 ‘선별적 대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쟁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논쟁이 충분히 진행되기도 전에 일련의 선거과정 속에서 보편적 복지가 시대적 소명으로 만들어졌고, 그 결과가 현재의 논란을 낳고 있다. 현재의 논란은 우리 모두의 이기심에서 비롯됐으며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할 조정과정으로 보인다.

선별적 복지로 전환하자는 의견, 복지를 위해 증세부터 하자는 의견, 두 가지 모두를 같이 추진하자는 의견 등 다양한 해법이 대두되고 있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부분적으로라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최근 연말정산 파동에서 볼 수 있듯이, 다수의 국민은 다른 사람들의 부담으로 자신의 복지를 누리고자 한다. 이런 국민정서로는 필요한 증세가 순조로울 수 없고 이미 시행 중인 무상시리즈가 선별적 제도로 전환되기도 매우 어렵다.

하나의 대안으로 향후 3년간 복지수준을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고 부족한 재원을 당분간 국가채무로 충당하며 치열하고 철저한 논의를 통해 한국의 현재 상황에 맞는 적절한 복지수준과 재원조달 방법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어떨까.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과정에서 충분히 하지 못했던 논의를 3년간 치열하게 진행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은 가장 적절한 복지수준과 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한 정당과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국민적 합의를 만들자.

정부와 국회의 리더십으로 일종의 ‘복지숙려기간’을 도입한다면, 먼저 정부는 현재의 경제상황과 세입 여건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평가해 알리고 지혜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추진 중인 개혁들을 빈틈없이 추진함으로써 정부는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과 재정여건을 개선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회는 보다 높은 책임의식으로 다양한 민의를 수렴하며 정쟁이 아닌 건설적 정책토론을 통해 지속가능한 복지수준과 재원조달 방안 모색에 모든 노력을 쏟아야 한다. 국민은 정부와 국회가 제시한 복지수준과 재원조달 방안을 엄밀히 검토하고 심사숙고해 후손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지속가능한 정책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그 결과가 자신에게 다소 불리하더라도 정부의 정책변화에 적극 협조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언론은 진영 논리나 황색 저널리즘에서 벗어나서 사실에 기초한 정책비교를 통해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언론의 순기능 제고에 충실해야 한다.

김학수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