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1914~1971·사진)은 백석과 더불어 193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백석이 평안북도 지방의 삶과 언어로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이었던 데 비해 이용악은 1930년대 유행한 모더니즘 풍토 속에서도 일제 강점기 아래 한민족이 마주친 현실을 기록한 시인이다. 1988년에 이르러 월북 문인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지만 이용악은 북한에서도 주류로 활동했기 때문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그간 나왔던 시집은 대부분 해방 이전에 나온 데다 절판된 상태였다.

이에 오랫동안 이용악을 연구해 온 곽효환 시인(대산문화재단 상무), 이경수 문학평론가(중앙대 국문과 교수), 이현승 시인(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이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이용악 전집(소명출판)을 펴냈다. 책은 이용악이 남긴 시집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발표한 시 전편과 산문집 ‘보람찬 청춘’, 좌담 자료까지 망라한다.

책을 엮은 곽 시인은 “이용악은 1930년대 한국 문학이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으로 갈려 다투고 있을 때 이 둘을 합친 선구적인 시인”이라며 “3인칭 관찰자로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문학적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이념에 깊숙이 빠져 선동적인 구호를 외치거나 현실에 등을 돌렸던 다른 시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지녔다는 설명이다.

이용악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 이어진 일제의 수탈과 이로 인해 고통받고 쫓겨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자신의 시에 ‘북방’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해 ‘북방의 시인’으로 불린다. 이 비극적 현실을 오히려 담담하게 말하기에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오랑캐꽃’ ‘그리움’ 등이 대표적이다. ‘꽃가루 속에’ ‘달 있는 제사’ 등을 읽으면 그가 서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도 탁월한 재능을 지닌 시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집엔 6·25전쟁 중 월북해 북한에서 남긴 작품도 충실히 실려 있다.

1940년대 들어 사회주의자가 된 그는 남조선노동당 출신으로 북한에 정착해 체제에 협력했다. 곽 시인은 “이용악은 해방 이전에는 민족 수난과 고통을 보여줬다”며 “월북 후 그의 작품에선 북한 문예이론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악은 1930~1940년대 일제강점기의 현실을 그렸으며 지금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특별한 매력을 지닌 시인이다. 998쪽, 5만9000원.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