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로 연행된 그는 ‘모든 포스터를 깨끗이 제거하는 조건’으로 일장 훈시를 듣고 풀려났다. 단단하게 붙인 포스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찌꺼기 하나 남지 않게 떼어내자 자정이 훌쩍 넘었다.
그는 인근 월세 공장에서 직원 5명을 데리고 부엌가구용 손잡이 등을 만드는 초라한 영세기업 사장이었다. 그 젊은이가 지금은 국내 최대 (욕실용) 환풍기제조업체인 힘펠의 김정환 사장(58)이다. 사업을 부엌가구 손잡이에서 환풍기로 확장하려고 해도 도무지 직원을 채용할 길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전봇대 홍보를 활용한 것이었다.
지금 이 기업은 종업원 88명에 작년 매출 276억원의 여엿한 중기업으로 성장했다. 화성에 있는 힘펠 본사는 호텔처럼 깨끗하다. 공장 및 사무동은 대지 7200여㎡에 건평 4300㎡ 규모다.
이곳 전시장에 들어서면 각종 환기팬이 진열돼 있다. 단순한 기능 제품에서 바람이 힘차게 일어나는 정풍량 고정압 환기팬, 천장 매립 멀티형 욕실팬, 조명과 난방을 겸한 환풍기 등 각양각색의 제품이 전시돼 있다.
뿐만 아니다. 여름철 냉방공기를 환기시킬 때 전기를 절약할 수 있는 무덕트 천장형 전열교환기도 있다. ‘휴젠뜨’라는 브랜드의 이 제품은 겨울철 따뜻한 바람이 욕실 천장에서 내려온다. 샤워를 한 뒤 몸과 머리를 말릴 수 있도록 또다시 바람이 내려온다. 난방 건조 제균 냉풍 환기 헤어드라이어라는 여섯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 제품이다.
환기팬은 집안의 공기를 밖으로 빼내면 되는 간단한 제품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제품을 개발해놨을까. 김 사장의 환풍기에 대한 생각은 일반인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환풍기와 전열교환기는 실내외 공기를 바꿔주는 기능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제품”이라며 “이를 위해 수많은 기능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힘펠이 얻은 특허 및 실용신안이 37건, 고효율 기자재 인증이 14건에 이르는 것은 그의 기술개발 노력을 보여준다.
본사 복도 벽엔 이런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기록돼 있다. 김 사장은 고향인 충북 영동에서 올라와 18세인 1975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동향인 박유재 회장이 창업한 오리표(에넥스의 전신)에 입사했다. 당시 오리표는 서울 신정동에 있었다. 목동신시가지가 개발되기 전 이곳은 여름철이면 물난리를 겪던 변두리였다. 그 뒤 자회사로 옮겨 일하는 등 14년간 오리표 관계사에서 일했다. 이 과정에서 생산 총무 기획 영업 부서를 거쳤다.
이후 안양에서 월세 공장을 얻어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김 사장은 32세였다. 초기 종업원은 5명이었다. 부엌가구용 손잡이 등을 만들어 납품했으나 1990년대 초반부터 욕실용 환기 제품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 출장 중 아이디어를 얻었고 때마침 신도시 개발붐이 일 때라 이 분야가 유망할 것으로 예상해서였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몇 가지 방향을 정했다.
첫째 기술개발을 통해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욕실용 환풍기는 날개가 서너 개 달린 프로펠러 형태의 일반 제품이었다. 김 사장은 이런 제품으로는 환기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터보형 제품’을 개발했다. 그는 “선풍기형 제품은 바람을 배출하는 힘이 약하고 소음만 많았다”며 “제트기 엔진처럼 날개 10여개가 촘촘하게 달린 터보 제품을 선보이자 건설업체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창업 초기 ‘진도정밀화학’이던 회사 이름은 나중에 힘펠(HIMPEL)로 바꿨다. 얼핏 들으면 독일계 회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순수한 국내 기업이다. ‘High Impeller’의 약자로 ‘힘 있는 임펠러(날개)’라는 의미다. 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풍량 고정압 환기팬, 천장 매립 멀티형 욕실팬, 욕실난방청정기를 잇따라 개발했다. 이 중 난방청정기는 난방 공기제균 건조 냉풍 환기 등 다양한 기능을 한데 넣은 제품이다.
김 사장은 “특허를 받은 밀폐강화장치로 냄새 역류를 막을 뿐 아니라 필터와 그릴을 분리해 세척할 수 있어 청소도 간편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무덕트 천장형 전열교환기 휴벤은 실내 공기를 청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오염된 공기를 실외로 배출하고 신선한 공기를 실내로 공급하는 에너지절감형 환기장치”라고 설명했다. 욕실 층간 소음저감기 등도 만든다.
그의 적극적인 성격은 취미에서도 나타난다. 50세에 스키를 배우기 시작해 불과 7년 만에 ‘레벨2’ 스키강사 자격증을 땄다. 한 번 도전하면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다.
둘째, 디자인이다. 실내에 다는 환풍기는 디자인이 중요하다. 그가 나뭇잎 모양의 환풍기를 개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사장은 “환풍기 표면에 나뭇잎 모양의 커버를 씌운 제품은 특히 동남아시아 중동 등 해외 바이어들이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셋째, 다양한 기능이다. 환풍기에 조명 난방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김 사장은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많은 때에는 환풍기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1차 보루”라며 “임직원이 이런 사명감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며 마케팅에 나선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 절감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여름철 환기를 할 때 냉기가 그대로 밖으로 나가고 바깥의 더운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에어컨의 전기 소모가 많아진다. 중간에 여러 개의 얇은 막으로 구성된 필터 형태의 열교환장치를 설치, 배출되는 차가운 공기가 집안으로 유입되는 뜨거운 공기를 식혀주는 방식으로 열 소모를 줄여주는 것이다.
그는 이제 힘펠의 도약을 위해 사무가구업체 퍼시스에서 임원을 지낸 문규선 전무(59)를 영입하는 등 인력 확충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 사장은 “그동안 건설업체에 대한 공급 등 판매전략이 단순했지만 앞으로는 건물 리모델링시장 등 소비자를 겨냥한 판매, 해외시장의 적극적인 개척 등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판매처를 건설사, 일반 소비자, 해외 등으로 다각화하는 ‘4·3·3 전략’을 세웠다. 매출의 40%는 일반 건설사, 30%는 일반 소비자, 또 다른 30%는 해외시장에서 일구겠다는 구상이다. 김 사장은 “건강을 생각한 다양한 기능의 제품개발에 주력해 힘차게 뻗어나가는 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