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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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솜씨 빼어난 어머니
가장 영향력있는 조언자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
가장 영향력있는 조언자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
우리 어머니는 그림을 잘 그리셨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숙제로 어머니가 그려준 화병에 장미가 가득 꽂힌 그림을 들고 학교에 갔다. 선생님은 이거 “네가 그렸니?”하셨다. 유난히 말이 없던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엄마가 그린 거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다음엔 네가 그려 와”하셨다. 내가 그려간 서툰 그림을 잘 그렸다며 벽에 붙여주신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김선중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이후 나는 아무리 어려운 숙제도 다 내가 해서 들고 갔다.
다시 태어난다면 화가가 되고 싶다는 우리 어머니는 30여년 전 옆집 사는 분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와 “집에 붙여놓게 따님 그림 하나 선물로 주세요” 해서 ‘호안 미로’ 그림 비슷한 추상화를 뚝딱 그려서는 우리 딸 그림이라며 선물로 주신 적이 있다.
20여년이 흐른 뒤 우연히 간 화랑에서 그 그림이 경매에 실려 가는 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 경매에 나가기 전 사실대로 말해서 목록에서 빠지기는 했지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선물을 주고 싶기는 한데 딸 그림을 주기는 싫었던 어머니가 그린 그림은 나름 너무나 훌륭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은 출판사를 경영하던 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생활고에 떠밀려 무산됐다. 그렇게 어머니의 재능과 감성은 내 핏속에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어머니가 쉰아홉 되던 해 어느날 아버지는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던 차중락의 노래처럼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람’이 됐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나이가 많은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딱 지금의 내 나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25년이 흘렀다. 몸은 늙어도 감각은 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젊은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내 그림에 가장 영향력 있는 조언자다. 어린 내 손을 잡고 나무로 된 가파른 미술학원 계단을 올라가던 어머니,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겁이 많아 미끄럼틀도 올라가지 못하던 내게 에디슨의 어머니처럼 꿈과 용기를 북돋아준 어머니, 그분은 나의 출생 시부터 천사처럼 다가와 아직도 천사처럼 내 곁에 존재하신다. 행복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린 그림을 꺼내본다. 정말 잘 그렸다. 아흔 되는 해에 그림을 곁들인 시집 한 권 출간해드려야겠다. 소설이라도 자서전이라도 드라마라도 좋겠다. 드라마를 즐겨보는 어머니가 드라마를 쓴다면 정말 드라마틱할 것 같다.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
다시 태어난다면 화가가 되고 싶다는 우리 어머니는 30여년 전 옆집 사는 분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와 “집에 붙여놓게 따님 그림 하나 선물로 주세요” 해서 ‘호안 미로’ 그림 비슷한 추상화를 뚝딱 그려서는 우리 딸 그림이라며 선물로 주신 적이 있다.
20여년이 흐른 뒤 우연히 간 화랑에서 그 그림이 경매에 실려 가는 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 경매에 나가기 전 사실대로 말해서 목록에서 빠지기는 했지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선물을 주고 싶기는 한데 딸 그림을 주기는 싫었던 어머니가 그린 그림은 나름 너무나 훌륭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은 출판사를 경영하던 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생활고에 떠밀려 무산됐다. 그렇게 어머니의 재능과 감성은 내 핏속에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어머니가 쉰아홉 되던 해 어느날 아버지는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던 차중락의 노래처럼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람’이 됐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나이가 많은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딱 지금의 내 나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25년이 흘렀다. 몸은 늙어도 감각은 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젊은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내 그림에 가장 영향력 있는 조언자다. 어린 내 손을 잡고 나무로 된 가파른 미술학원 계단을 올라가던 어머니,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겁이 많아 미끄럼틀도 올라가지 못하던 내게 에디슨의 어머니처럼 꿈과 용기를 북돋아준 어머니, 그분은 나의 출생 시부터 천사처럼 다가와 아직도 천사처럼 내 곁에 존재하신다. 행복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린 그림을 꺼내본다. 정말 잘 그렸다. 아흔 되는 해에 그림을 곁들인 시집 한 권 출간해드려야겠다. 소설이라도 자서전이라도 드라마라도 좋겠다. 드라마를 즐겨보는 어머니가 드라마를 쓴다면 정말 드라마틱할 것 같다.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