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상고법원 설치 논란
상고법원 설치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다. 대법관 한 사람이 한 해 3000건씩 상고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심지어 교통범칙금 사건까지 대법원에 쇄도하면서 중요한 재판이 늦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사건을 제때 판단하고 법해석상 통일을 기해야 하는 최고법원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별도의 상고법원 설치 반대론도 만만찮다. 헌법상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재판받고 싶은 당사자들의 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다. 상고법원 판사들이 최종심을 맡을 실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상고사건 폭주는 대법관을 더 늘리는 등 다른 대안을 찾아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대법관 수를 늘리는 데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는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막말 댓글 판사, 사채왕 뇌물 판사 등 법관들의 비리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상고법원 도입 추진력도 떨어지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에선 별도의 상고법원 없이 최고법원이 상고 여부를 판단해 사건을 선별하는 등 우리와 제도가 다르다. 상고법원 설치 여부는 한국 사법사(史)에 획을 긋는 중차대한 일인 만큼 타당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찬성 / “폭증한 상고사건 양질의 심리…대법원은 정책 법원으로 가야”

대법관 수 늘리면 전원합의체 운영 어려워


[맞짱 토론] 상고법원 설치 논란
상고법원에 관한 국회 논의가 시작됐다. 그간 상고제도 개선에 관해 논의만 무성하고 결론이 없어 국민의 불편은 쌓여갔다.

작년 한 해 대법원 사건은 3만8000건에 육박한다. 지난 10년 동안 2배 늘었고, 작년에도 4.1% 증가했다. 그중에는 통상임금이나 안락사 사건과 같이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건부터 민사소액사건과 자백하는 정식재판 청구사건, 심지어 교통범칙금 사건까지 대법원에 밀려오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법원 판결을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고, 판결 이유는 간략해 이해하기 어려우며 사회적 의미가 큰 사건도 심혈을 기울여 재판할 시간이 부족하다.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대법관 전원의 치열한 토론을 거치는 전원합의체 재판이 필수적이다. 여러 이념과 가치관을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심리해야 사회구성원 모두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올바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와 달리 개인 간 분쟁사건은 신속하면서도 그 마음을 달래줄 충실한 판단이 필요하다. 법원은 적정한 결론으로 국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분쟁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국은 어떤가.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각국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만 상고심에서 처리하고, 나머지 개인 간 분쟁은 2심으로 끝내는 상고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1980년대 상고허가제를 시행했으나 10년 만에 폐지되고 말았다. 이후 심리불속행제도를 도입해 법이 정한 상고 이유를 포함하지 않은 사건은 이유 설명 없이 기각하고 있다.

상고법원안은 사회적 의미가 큰 사건의 경우 전부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재판하고, 현재 심리불속행으로 이유 설명 없이 기각되는 사건도 상고법원에서 충실하게 재판한다는 것이다. 상고법원이 권리구제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됨으로써 대법원은 국민 다수의 권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건 및 법령 해석 통일이 쟁점이 되는 사건의 심리에 집중적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현실적 방안이다
[맞짱 토론] 상고법원 설치 논란
혹자는 대법관을 증원하자고 하는데, 몇 명 늘린다고 해결될 사건 수가 아니다. 또 사건은 해마다 증가하는데 그때마다 계속 늘릴 수도 없다. 헌법상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하는 행정부 공직은 국무총리와 감사원장뿐이다.

그런데 사법부에만 국회 동의를 거치는 대법관 수십 명을 두는 것은 헌법이 예정한 모습이 아니고, 권력 균형에도 맞지 않는다. 더구나 수십 명의 대법관으로는 전원합의체가 불가능하다. 대표들을 뽑으면 된다고 하는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 등에서 이렇게 판결된 사건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숫자만 늘려서는 중요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음이 분명하고,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4심제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상고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불복할 수 있을 뿐이고 대부분은 3심으로 끝난다. 대법관에 준하는 경륜을 갖춘 상고법관이 헌법위반, 판례위반 판결을 마구 선고할 것을 전제로 4심제라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사실 왜곡이다.

국민의 의사는 충실하고 신속한 재판, 자신의 사정을 귀 기울여 잘 듣고 억울함이 없는 재판을 해달라는 거다. 또 최고법원은 부당한 권력을 견제하고 사회 전체에 의미 있는 규범을 선언해 달라는 거다. 무엇이 국민을 위한 길인지 바르게 고민해 결론을 내놓을 때다.

반대 / “대법원서 재판받을 권리 침해…판결 불복할 경우 4심제 우려”

서울에만 설치 땐 지방 거주민 권리도 제한


[맞짱 토론] 상고법원 설치 논란
별도의 상고법원을 설치해 대법원은 법령해석을 통일하고 법적 가치 기준을 제시하는 최고법원 기능을, 상고법원은 충실한 심리를 통해 개별사건의 권리구제 기능을 집중 담당하도록 하자는 취지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다만 상고법원 도입 시 예상되는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대법원 재판받을 권리’의 제한 문제이다. 헌법은 제101조 제2항과 제110조 제2항에서 대법원을 최고심으로 하는 사법제도를 명기하고 있으므로 헌법 해석상 재판청구권에는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상고법원을 도입해 위 권리를 제한하는 문제는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재판청구권에 대한 제한’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상고법원은 위계상 대법원 하급법원에 속하는데 상고법원의 기각결정에 대해서는 불복할 수 없게 되므로, 하급법원의 판결에 불복할 수 없는 결과가 된다.

둘째, 사법 수요자인 국민 여론을 충실히 반영한 결정인지 여부이다. 기본권으로서 재판청구권은 국가가 제공하는 사법구조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피동적 권리가 아니다. 상고법원 도입 계기가 된 문제는 대법관을 비롯해 법관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개선될 소지가 크다. 한국은 대법관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법관도 사건 수의 과중함에 시달리고 있고, 이는 심리 부실화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점에서 우리도 ‘정책법원으로서의 대법원’보다는 독일 프랑스와 같이 ‘실무형 대법원’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셋째, 실질적 4심제 문제이다. 대법원 특별상고가 허용된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4심제라고 할 수 있다. 4심제 자체가 헌법상 불허되는 것은 아니나, 과도한 시간과 비용을 초래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나아가 상고법원 판결에 원칙적으로 불복할 수 없는 경우 국민은 최후 수단으로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제기할 것이고, 만에 하나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실질적 4심제가 고착될 우려가 크다.
[맞짱 토론] 상고법원 설치 논란
넷째, 미국 연방대법원 등과의 비교법적 검토 문제이다. 미 연방대법원이 정책적인 판결을 자주 하는 이유는 대법관 임명 방식과 임기 등이 우리와 다른 사법제도에 기초하고 있어서다. 미국은 인구가 3억명이 넘고 독립적인 주권을 가진 50개주에 대법원이 따로 있다. 주별로 3심제(11개주 제외)를 시행하며 연방헌법과 연방법률 관련 사건을 제외하고 주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주법원에서 3심제를 통해 충분히 심판한다. 연방대법원이 상고허가를 통해 사건을 선별하는 것은 4심제를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따라서 대법원 사건 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미국 연방대법원과 같은 역할을 우리 대법원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다섯째, 지방에 대한 차별 문제이다. 상고법원을 서울에만 설치하는 것은 지방 거주 국민의 재판청구권과 지방에서 개업 중인 변호사들의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여섯째, 대법원 심판사건과 상고법원 심판사건에 대한 구별 기준의 모호성이다.

사건 수 과다로 인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은 대법관 증원이다. 굳이 상고사건의 업무 경감을 도모한다면, 상고법원을 따로 두기보다는 대법원 내에 상고심사부를 두고 대법관 중 1인이 재판장이 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또 합헌적이다. 다만 향후 상고법원이 도입된다면 심리불속행제도 폐지와 함께 상고심 사건의 필수적 변론주의와 국선대리인 제도, 대법관 및 상고법원 판사 임명의 다양화, 상고법원의 지방 설치 등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