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세계 빚 23경원…돈 빌린 사람이 '갑'인 시대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가 세계 부채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액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홍역을 치렀지만 빚이 줄기보다 오히려 너무 많이 늘었다. 조만간 금융위기가 다시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될 정도다.

작년 2분기 말을 기준으로 세계 각국의 빚(공공부채+민간부채)은 총 199조달러에 달한다.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이후 약 57조달러가 급증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6경3000조원에 해당한다. 금융위기 이후 증가하는 속도를 감안하면 세계의 빚은 올해 2월 210조달러(약 23경1000조원)를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 인구 1인당 3300만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빚이 빠르게 늘어난 원인을 공공과 민간으로 나눠 살펴보면 공공 부문은 ‘재정적자 화폐화’가 주범이다. 당면한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단 중앙은행에 매각하고 나중에 되사주는 소위 ‘바이 백(buy-back)’ 형식의 국채가 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이 심했다.

민간 부문 빚이 늘어난 것은 양적 완화로 돈이 많이 풀린 데다 금리를 제로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낮춰놨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자 정책당국(은행도 가세)이 기업과 가계에 빚(대출)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한몫했다. 돈을 꿔준 사람보다 꿔간 사람이 큰소리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도 이 요인이 크다.

빚의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선진국의 빚(공공 부채)이 주로 늘어났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신흥국의 빚(가계 부채)이 급증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세계 빚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22%에 불과했으나 올해 2월 들어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7년 사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앞으로 빚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해 빚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아직도 위기가 지속되고 있어 빚을 내야 할 일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이후 미국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국제 금리가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진입할 경우 빚이 또 다른 빚을 부르는 ‘나선형 악순환 고리’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애프터 크라이시스(after crisis)’ 성격이 짙은 세계 빚이 과도하게 많아지면서 우려되는 것은 ‘통화정책 전달경로(통화 공급→금리 하락→총수요 증가→경기 부양)’가 작동하지 않는 점이다. 이때 금융과 실물 간 따로 노는 이분법 경제에 처해 돈을 푼다 하더라도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현상이 발생한다.

재정정책은 시차가 길어진다. 시차는 정책 입안에서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내부(행정) 시차’, 정책 확정 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외부(집행) 시차’로 구분된다. 표심에 가장 민감한 빚이 많아지면 내부 시차가 길어지는 고질적인 악습이 나타난다. 확정된 재정정책도 ‘구축 효과(공공지출 증가가 민간 수요를 위축시키는 현상)’로 경기부양 효과가 반감된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세계 빚 23경원…돈 빌린 사람이 '갑'인 시대
특히 가계 빚이 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큼 물가가 낮은 여건에서는 실질 자산소득과 실질 부채 부담이 동시에 늘어나 계층별 빈부 격차가 더 확대된다. 상대소득 가설에 따르면 돈이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보다 소비 성향(평균, 한계 모두)이 높기 때문에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경기까지 침체된다.

자국 통화 평가절하 등의 다른 목적이 있긴 하지만 올 들어 빚이 많고 물가가 낮은 국가일수록 금리를 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설령 빚의 절대 규모가 늘어나지 않더라도 저물가에 따른 실질 부채 부담이 증가하는 것을 금리 인하 등을 통해 보완해 줘야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경기가 둔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은 가계 빚이 많은 국가다. 이번 보고서에서 캐나다, 스웨덴, 호주 등과 함께 7대 가계부채 취약국으로 분류됐다. 빚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원리금상환부담률은 7대 취약국 중에서도 가장 높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물가목표치(2.5~3.5%)의 하단 밑으로 떨어진 지 2년이 넘었다. 지난 1월에는 0%대로 떨어졌다. 넓은 의미의 디플레이션인 ‘로플레이션(lowflation)’ 단계다.

올 들어 가계부채 취약국은 대부분 금리를 내렸다. 중앙은행 목표인 물가는 부담이 없다. 신흥국도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금 이탈 방지보다 자국 경기 부양 쪽으로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 금리 인하 등을 통한 외환시장 개입 효과는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를 보면 신흥국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열 한은 총재를 비롯한 금융통화위원들이 금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 결정만 기다려질 뿐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