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데스크 시각] 차기 신한은행장의 조건
신한금융그룹에서 ‘신한사태’는 금기어나 마찬가지다. 임원이건 직원이건 신한사태를 먼저 입에 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다가 사석에서 신한사태 얘기가 나오면 애써 외면한다. 자리를 피하거나, 못 들은 척한다. 그들에게 신한사태는 그만큼 아픈 상처다.

벌써 4년도 넘어 잊혀진 듯했던 신한사태가 다시 관심사로 부상했다. 두 가지 계기였다. 우선은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으로 인해서였다. 라 전 회장은 지난달 29일 농심의 사외이사 후보로 공시되면서 관심을 끌었다.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어 검찰 조사에도 응하지 못한 그였다. 그런 사람이 대기업 사외이사 후보가 된다고 하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10월 그를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던 참여연대는 즉각 반발했다. 라 전 회장은 결국 농심 사외이사 후보직을 자진사퇴했다.

후보로 거론되는 다섯명

또 다른 계기는 서진원 신한은행장의 갑작스런 입원이었다. 그가 지난달 초 입원할 때만 해도 금방 퇴원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웬걸. 입원은 한 달을 넘겼다. 지난 11일에야 퇴원했다. 얼마 동안은 통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도 받았다고 한다. 신한은행은 오는 24일 후임 행장을 선출키로 했다.

서 행장은 신한사태 당시 신한생명 사장이었다. 신한사태와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신한사태 이후 행장으로 선임돼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과 함께 후유증을 빠르게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 행장이 신한지주 등기이사와 신한은행 부회장직을 유지하다가 건강이 회복되면 한 회장의 뒤를 이을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신한사태가 다시 언급되는 것은 누가 그의 후임자가 될 것이냐를 둘러싸고서다. 서 행장의 후임자로 거론되는 사람은 대략 다섯 명으로 추려진다.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 조용병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 김형진 신한지주 부사장, 이성락 신한생명 사장, 임영진 신한은행장 직무대행(부행장) 등이 그들이다. 각자 특유의 강점을 가져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신한사태’ 후유증 치유해야

하지만 신한사태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달라진다. 두 사람은 신상훈 당시 신한지주 사장을 고발한 은행 쪽이었다고 한다(본인들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한 사람은 신 전 사장 편에 섰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한 발 비껴 나 있었다.

이런 이유를 들어 특정인은 안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 걸 따지지 말고 은행 발전을 이끌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신한사태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과 금융감독원 추가 징계를 앞두고 있다. 참여연대 고발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도 진행 중이다. 한 회장과 서 행장이 신한사태 후유증을 어느 정도 치유했다고 하지만,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전·현직 직원이 아직도 상당하다.

그런 만큼 차기 신한은행장의 자격 조건에 신한사태 후유증을 완전히 치유하겠다는 의지를 가졌는지를 추가했으면 한다. 신한사태 때 누구 편에 섰는지, 아니면 한발짝 떨어져 있었는지 등은 따지지 말고 말이다. 그래야만 신한은행이 진정한 국내 리딩뱅크로 우뚝설 수 있고, 국내 금융산업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