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스위스 페그제 폐지에 시장이 놀란 이유
2015년 새해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정책 발표와 함께 시작됐다. 스위스중앙은행은 스위스프랑과 유로화 간의 고정환율을 포기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회원국의 국채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캐나다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덴마크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돌려놓았다. 싱가포르통화청은 돌연 통화완화 정책을 단행했다. 모두 극적인 결정이었다.

과연 이 모든 결정들은 각 중앙은행이 속한 지역의 국경을 넘어서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각국 중앙은행 정책이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1조유로 이상의 유로화를 추가 발행할 것이라는 ECB의 계획은 유로존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서는 잠재적 파급효과를 지니지만, 아시아나 미주지역의 재화와 서비스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유로화 또는 엔화의 유동성이 달러의 유동성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각국의 통화정책이 글로벌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외환시장을 통해서다. 한데 외환시장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환율을 예측하는 명확하고 보편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통화 정책만으로 결정되지도 않는다. 적어도 상대국의 통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달러에 대한 유로의 가치가 ECB 정책에도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미국 중앙은행(Fed)의 정책에도 영향을 받는다.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이 해당 지역에 국한된다는 특징에서 벗어나는 예외 사례로 스위스중앙은행의 결정을 들 수 있다. 싱가포르통화청의 결정 역시 그럴 가능성이 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더욱이 스위스 경제규모는 유로존의 주변국들과 비교했을 때 크지 않다. 그런데도 스위스의 정책적 결정은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과 금리의 추가 하락을 초래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경제 규모 또한 크지 않지만 싱가포르통화청이 통화의 절상 속도를 간단히 늦출 수 있었다. 이 두 나라의 결정은 대체 왜 중요한 것일까.

이는 두 결정에서 초래된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스위스중앙은행 관계자들은 페그제가 폐지되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스위스프랑의 절상 제한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도 전혀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일시적으로 유로화 대비 40% 급등했던 결과에서 보듯이, 스위스중앙은행이 취한 결정은 매우 뜻밖이었다. 싱가포르가 언젠가는 통화완화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시점이 정상적인 정책사이클을 벗어났기 때문에 역시 뜻밖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중앙은행들은 금융제도상 존재하는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양적 완화 정책은 시장 내 유동성 리스크 감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스위스, 그리고 어쩌면 싱가포르의 정책 변화는 다시 한번 불확실성과 그에 동반되는 리스크를 글로벌 금융시장에 안겨줬다. 통화정책은 지역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나, 이미 세계화된 금융시장에서 위험성과 위험회피 심리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라고 봐야 한다.

이것이 ECB의 정책적 결정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유다. ECB의 결정은 대부분 예측된 것이었으며, 큰 경제적 변화를 초래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하나의 약속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스위스중앙은행과 싱가포르통화청의 결정은 불확실성을 크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는데,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국경을 넘어 파급력을 가지는 요소다. 따라서 불확실성에 대한 금융시장의 대비가 부족하다면, 그 조치의 결과는 크고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폴 도노반 < UBS 선임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