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약은 말표, 바둑알은 신광…가업승계로 일군 장수 중기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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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지탱해온 기업들
끊임없는 투자·기술개발로
국내 넘어 해외시장 개척
끊임없는 투자·기술개발로
국내 넘어 해외시장 개척
말표구두약, 신광바둑알, 전통예산옹기, 신진금고….
각 분야에서 ‘일반명사’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이 알려진 국내 중소기업 제품이다. 시장에서 점유율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수백년 이상 가는 가업승계 중소기업이 많이 태어나 경제를 지탱하는 뿌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이들 제품을 만든 기업은 길게는 160여년 된 장수 회사다. 3~4대에 걸쳐 가업승계가 잘 이뤄졌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수출로 새로운 미래 먹거리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구두약의 대명사 ‘말표 구두약’
구두약의 대명사로 통하는 말표구두약은 군납 사업자였던 고 정두화 말표산업(옛 태양사) 대표가 만들었다. 구두닦이들이 미제 구두약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군납사업 때 인연을 맺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당시 25사단 참모장)이 당시 유명했던 일본 ‘3H 구두약’으로부터 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줬다. 덕분에 정 대표는 1967년 최초로 국산 구두약을 내놓았다. 말표라는 이름도 박 회장이 지어줬다. 당시엔 말가죽 구두를 최고로 쳤다.
2대 정연수 대표, 3대 정홍교 대표로 가업이 이어지면서 화장품과 자동차 용품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본업인 구두약은 옛날보다 길이 좋아지면서 국내에선 수요가 줄었지만 비포장 도로가 많은 러시아 몽골 등에서 말표구두약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최초의 바둑알 신광바둑
충북 금산면에 있는 신광바둑은 대전의 한 단추공장에 다니던 허복래 회장이 1946년 설립했다. 당시 조남철 국수가 단추공장에 찾아와 “바둑알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신광바둑은 국내 최초로 바둑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조훈현 서봉수 등 프로기사들의 주요 대국엔 모두 신광바둑알을 썼다. 1997년 외환위기는 오히려 기회였다. 퇴직자들이 기원에 몰리면서 바둑알 품귀 현상을 빚었다. 신광바둑은 중국 지난시에 공장을 세웠다.
허 회장의 뒤를 이어 셋째 아들 허윤구 대표가 가업을 물려받았다. 허 대표는 태국 등 한류 열풍이 부는 해외에 판매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컬러 바둑알, 10만원대 음이온 바둑알 등 제품을 다양화했다. 손세정제 등 생활용품도 생산하고 있다. 그는 “바둑과 건강 분야를 접목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60년 된 4대 옹기장이
충남 예산군 오가면 오촌리의 전통예산옹기는 4대에 걸쳐 160년 동안 옹기를 굽고 있다. 천주교를 믿다 박해를 피해 1855년 충남 예산으로 온 1대 황춘백 씨가 옹기공방을 세웠다. 2대 황동원, 3대 황충길 씨에 이어 4대 황진영 전무가 회사를 이끌고 있다. 대를 이어가면서 ‘남들 보기에 괜찮더라도 우리 눈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제품은 그 자리에서 모두 깬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옹기는 미세한 구멍을 통해 숨을 쉬면서 내용물의 열과 특성을 보존하는 우리 조상의 최고 발명품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신진금고, 고령기와…
신진금고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금고 공장에서 기술을 배운 고 이준용 회장이 1945년 세웠다. 1960년대 산업화 바람으로 은행 지점과 부자들의 금고 수요가 늘면서 회사 덩치가 커졌다. 가정용 금고보다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은행용 대여금고 시장에서 점유율 60%를 차지하고 있다. 2대 이재원 대표에 이어 ‘스포츠 에이전트’의 꿈을 접은 아들 동희 씨가 3대 승계를 준비 중이다.
경북 고령군 개진면의 고령기와는 1953년 설립된 이후 고령토로 기와를 만들고 있다. 김영하 창업자에 이어 2대 김은동 회장, 3대 김병주 대표에 이르렀다. 전통 한식 기와와 현대식 기와를 하루 3만장씩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각 분야에서 ‘일반명사’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이 알려진 국내 중소기업 제품이다. 시장에서 점유율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수백년 이상 가는 가업승계 중소기업이 많이 태어나 경제를 지탱하는 뿌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이들 제품을 만든 기업은 길게는 160여년 된 장수 회사다. 3~4대에 걸쳐 가업승계가 잘 이뤄졌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수출로 새로운 미래 먹거리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구두약의 대명사 ‘말표 구두약’
구두약의 대명사로 통하는 말표구두약은 군납 사업자였던 고 정두화 말표산업(옛 태양사) 대표가 만들었다. 구두닦이들이 미제 구두약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군납사업 때 인연을 맺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당시 25사단 참모장)이 당시 유명했던 일본 ‘3H 구두약’으로부터 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줬다. 덕분에 정 대표는 1967년 최초로 국산 구두약을 내놓았다. 말표라는 이름도 박 회장이 지어줬다. 당시엔 말가죽 구두를 최고로 쳤다.
2대 정연수 대표, 3대 정홍교 대표로 가업이 이어지면서 화장품과 자동차 용품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본업인 구두약은 옛날보다 길이 좋아지면서 국내에선 수요가 줄었지만 비포장 도로가 많은 러시아 몽골 등에서 말표구두약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최초의 바둑알 신광바둑
충북 금산면에 있는 신광바둑은 대전의 한 단추공장에 다니던 허복래 회장이 1946년 설립했다. 당시 조남철 국수가 단추공장에 찾아와 “바둑알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신광바둑은 국내 최초로 바둑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조훈현 서봉수 등 프로기사들의 주요 대국엔 모두 신광바둑알을 썼다. 1997년 외환위기는 오히려 기회였다. 퇴직자들이 기원에 몰리면서 바둑알 품귀 현상을 빚었다. 신광바둑은 중국 지난시에 공장을 세웠다.
허 회장의 뒤를 이어 셋째 아들 허윤구 대표가 가업을 물려받았다. 허 대표는 태국 등 한류 열풍이 부는 해외에 판매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컬러 바둑알, 10만원대 음이온 바둑알 등 제품을 다양화했다. 손세정제 등 생활용품도 생산하고 있다. 그는 “바둑과 건강 분야를 접목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60년 된 4대 옹기장이
충남 예산군 오가면 오촌리의 전통예산옹기는 4대에 걸쳐 160년 동안 옹기를 굽고 있다. 천주교를 믿다 박해를 피해 1855년 충남 예산으로 온 1대 황춘백 씨가 옹기공방을 세웠다. 2대 황동원, 3대 황충길 씨에 이어 4대 황진영 전무가 회사를 이끌고 있다. 대를 이어가면서 ‘남들 보기에 괜찮더라도 우리 눈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제품은 그 자리에서 모두 깬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옹기는 미세한 구멍을 통해 숨을 쉬면서 내용물의 열과 특성을 보존하는 우리 조상의 최고 발명품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신진금고, 고령기와…
신진금고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금고 공장에서 기술을 배운 고 이준용 회장이 1945년 세웠다. 1960년대 산업화 바람으로 은행 지점과 부자들의 금고 수요가 늘면서 회사 덩치가 커졌다. 가정용 금고보다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은행용 대여금고 시장에서 점유율 60%를 차지하고 있다. 2대 이재원 대표에 이어 ‘스포츠 에이전트’의 꿈을 접은 아들 동희 씨가 3대 승계를 준비 중이다.
경북 고령군 개진면의 고령기와는 1953년 설립된 이후 고령토로 기와를 만들고 있다. 김영하 창업자에 이어 2대 김은동 회장, 3대 김병주 대표에 이르렀다. 전통 한식 기와와 현대식 기와를 하루 3만장씩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