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말 끝나는 구제금융 기한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열린 이날 협상은 그리스의 채무불이행과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를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유로존 각 국이 이번 합의안에 대한 자국 의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 시간을 감안하면 더 이상의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게 양측 모두의 판단이었다. 특히 실질적이 협상 당사자인 독일과 그리스는 보다 유리한 협상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언론을 통해 상대방을 압박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기도 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20일 마지막 협상을 앞두고 독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제금융 연장 요청은 받아들여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번 협상 타결이 ‘역사적인 정치적 결정’이 될 것이라고 독일의 타협을 촉구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그리스는 양자 모두 이득이 될 수 있는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며 “지금이야말로 유럽의 미래를 위해 역사적인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라고 독일을 압박했다.
또 다른 그리스 정부 고위 관리도 로이터통신에 “그리스가 많은 양보를 한 만큼 유로존도 유연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가 다섯 발짝 중 네 발짝을 먼저 다가갔다”며 “이제 유로존이 나머지 한 발짝을 디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는 이날 합의가도출되기를 원하지만 유로그룹의 압력에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독일도 막판까지 그리스의 긴축과 경제구조 개혁을 위한 실질적 조치가 따르지 않는 구제금융 연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리스를 압박했다. 독일 정부는 그리스의 구제금융 연장 요청에 대해 “추가적인 논의를 하기위한 좋은 신호”라면서도 “현재의 형태로는 수용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반박했다.
다른 회원국들의 반발도 회담 분위기를 막판까지 예측불허 상황으로 몰고 갔다. 네덜란드 정부는 그리스의 구제금융 연장 요청은 수용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내용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2년에 그리스가 구제금융 조건을 제시했고, 이를 지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의 몫이며, 그리스가 이를 지키겠다는 확신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유럽중앙은행(ECB)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비 중이며, 그렉시트 이후 유로존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비상대책을 준비중이라고 보도했다. ECB가 협상 결렬에 대비한 플랜B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를 막판까지 압박하기 위한 포석을 해석된다. 슬로바키아 재무부도 “우리보다 훨씬 경제사정이 나은 그리스에 특혜를 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그리스의 연장 요청에 강한 반대를 제기하는 등 다른 회원국들의 반발도 잇따랐다.
결국 이날 협상은 팽팽한 대립끝에 파국을 피하기 위해 각자의 입장을 절충시킨 4개월 연장에 합의하는 것으로 마라톤 협상을 끝냈다. 블룸버그는 이날 협상결과에 대해 양측 모두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라는 즉각적 위협을 완화시키기 위해 한발짝 물러섰다며 향후 그리스와 독일간의 관계 개선과 타협을 위한 여지도 남겼다고 분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