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은 피했다. 20일(현지시간) 브뤼셀 벨기에에서 열렸던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협의체)회의가 11시간 마라톤 협상 끝에 그리스 구제금융 기간을 4개월 연장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오자 전 세계 금융시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칫 글로벌 금융시장을 파국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다행히 그리스 유로존 탈퇴라는 ‘블랙스완’의 출현은 막았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번 협상 결과가 단지 시간을 번 것에 불과하다며 여전히 우려섞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이날 합의에 대해 일단 그리스의 파산 위험부터 피하고 보자는 절박함이 작용한 결과였지만,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고 지적했다.

우선 그리스를 포함, 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 유로존 회원국이 이번 합의안을 승인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리스 정부가 72억유로의 유동성 지원을 받기 위해 이행해야 할 개혁과제들도 포함돼 있다. 그리스 정부는 이행가능한 목록을 23일까지 유로그룹에 제안해야 한다.

구제금융의 철폐를 공약으로 걸고 정권을 잡은 치프라스 정부로서는 그리스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채권단의 입장은 강경한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이번 합의는 신뢰를 위한 첫 걸음”이라며 “그리스가 23일 제출할 이행목록은 상호 신뢰를 쌓는 문제인 만큼 매우 중요하다”고 그리스를 압박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여전히 이달말끝나는 구제금융 기한이 연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 그리스 시중은행의 뱅크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이번 합의에는 그리스 국가채무에 대한 탕감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역시 치프라스 정부가 선거 과정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다. 6월까지 시간을 벌었지 협상과정에서 양측의 이견이 커 절충이 쉽지 않은 대목이다. 이번 합의안에 대해 그리스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지수라는 점도 그리스 정부의 운신을 좁게 하고 있다.

이번 합의 결과에 따라 그리스가 흑자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복지예산을 포함, 정부 지출을 줄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구조개혁을 포기하고 재정목표 달성을 어렵게 하는 이전 정책으로 돌아가려는 어떠한 시도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어 여전히 갈등의 소지가 남아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가 그리스 정부로 하여금 현재의 구제금융 조건을 성공적으로 이행한다는 동의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조건은 4월까지 협상을 통해 조정이 가능하지만, 그리스 정부의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