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큰 꿈 만들어갈 모습 보니 행복하구나"
“20년 넘게 운영해온 학원을 정리하면서 강희와 형, 두 명을 어떻게 대학에 보낼지 걱정이 컸는데…. 어제 등록금 13만3500원을 입금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했단다.”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조미순 씨(52)는 최근 아들 김강희 군(19)에게 편지를 썼다. 조씨가 펜을 든 이유는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이 지난달 보내온 편지 때문이었다. 정 총장은 신입생 학부모들에게 “자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과 권하고 싶은 책을 적은 편지를 학교에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7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두 아들을 키워온 조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중화동에서 20여년간 운영해온 보습학원의 문을 닫았다.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든 탓이다. 생업이 끊기자 두 아들의 등록금을 마련할 걱정에 속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김군이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에 4년 장학금을 받고 합격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조씨는 “세월이 지나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아빠를 만나길 기대한다”며 “사랑하는 우리 강희 덕분에 좋아할 아빠 얼굴이 생생하다”는 글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성균관대가 신입생 학부모와 주고받는 ‘편지 소통’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성균관대는 2010년부터 신입생 학부모에게 총장의 축하 편지와 함께 추천 도서 목록을 보내고 있다. 학부모가 목록에 있는 책 가운데 한 권을 골라 편지에 함께 적어 보내면 학교 측은 입학식 날 학생에게 부모의 편지와 책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오거서(五車書·다섯 수레에 실을 정도로 많은 책) 운동이라 이름 붙여진 행사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금까지 매년 2000여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올해도 총장의 편지를 받은 신입생 4147명의 학부모에게서 설 연휴 전날인 17일까지 1039통의 답장이 왔다.

편지에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성균관대 동문인 이동규 씨는 의예과에 합격한 딸 은송양(19)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루하루 애 티를 벗어나 어른이 돼가는 네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빠는 그 나이 때 어땠을까 많이 생각하고 이해하려고도 해본다”면서도 “하지만 마음대로 안 될 때가 더 많다”고 품에서 벗어나려는 딸을 바라보는 심경을 드러냈다. 이씨는 그러면서도 “아빠와 같은 곳에서 젊음의 고뇌와 고충 그리고 패기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면서 큰 꿈을 만들어갈 송이를 생각하니 정말 행복하다”고 전했다.

박재덕 군(19·전자전기 컴퓨터공학계열 합격)의 어머니 서지현 씨는 입시를 앞둔 아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병을 숨겼던 사연을 편지에 담았다. 서씨는 “수능 1주일 전 입원 권유를 뒤로한 채 ‘12년간 공부만 하고 지내온 내 아들도 있는데 이까짓 아픔 정도야 참아낼 수 있다’고 몇 번씩 다짐하며 수능 날까지 너에게 아무 내색 없이 버텨내느라 엄마가 좀 많이 힘들었다”며 당시 심경을 표현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