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학자들은 복지를 줄이는 것보다는 증세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경제신문이 그제 연세대에서 열린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 참가한 교수와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설문에 응한 경제학자 중 48.5%가 ‘복지를 줄이기 어려운 만큼 증세가 불가피하다’에 방점을 찍었고 ‘증세는 미래를 위해 아껴야 하므로 복지를 줄여야 한다’를 선택한 학자는 18.5%에 불과했다.

다소 놀라운 결과다. 부자증세와 관련해서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으므로 세금을 더 내도 된다’는 응답이 47%를 차지했다. 또 한국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약점으로 양극화 등 경제불균형(29.1%)을 가장 많이 꼽고 있는 것도 의외다. 물론 이 결과가 한국 경제학자들의 보편적이고 공통된 인식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답변임에는 분명하다.

경제학은 현실 참여도가 높은 학문이다. 설문에 응한 학자들은 당연히 실증적 자료나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현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복지 축소는 불가능하므로 증세를!’을 선택했다면 이런 논리를 경제학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복지와 세금의 장기적 다이내믹을 간과한, 정태적이고 단기적이며 선형적인 인식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경제의 확대선순환이 가능한 다른 방법, 즉 생산성을 높이거나 성장 한계를 돌파하는 문제에 대한 깊은 고뇌 없이 단순히 정치적 논리들이 학자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경제학만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유혹이 강한 학문도 드물다. 정치 편향적이며 대중추수적인 성향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학문 분야이기도 하다. 분배나 사회후생론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학이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본질적 가치와 미적 완성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혹여 경제학자가 정치권에 많이 진출한 결과가 학자들을 거꾸로 정치화하는 퇴행적 경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박근혜 경제정책에 대한 평점을 C 이하로 준 학자들이 84.9%에 달했다는 사실은 그래서인가. 정책적 대안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