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초록색 만년필
사춘기 시절 나는 시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윤동주와 이상화, 박목월과 서정주, 이상과 박인환, 이 밖에도 수많은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밤새 노트에 적고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 시절의 어린 나는 “그중의 일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라는 이상의 ‘오감도’를 노트에 적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겉멋이 들 대로 든 나는 너무 많이 알려져서 흔한 듯 느껴지던 소월의 시들은 별로 적지 않았다.

나이 들수록 모차르트가 좋듯이 소월의 시들이 좋아진다. 얼마 전 창고 속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중학교 시절 또박또박 정갈한 글씨로 시를 적어놓은 두꺼운 노트를 발견했다. 내 청춘의 백과사전 같은 소중한 기록이었다. 그 글씨들은 약간 나른한 듯한 초록색 잉크로 쓰여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입학 축하선물로 어머니가 사준 파커 만년필로 써내려간 45년 전의 낡은 노트였다.

세월은 매 순간 우리의 등을 떠밀어 시간의 강 속으로 빠뜨린다. 그때만 해도 파커 만년필은 귀한 물건이었다. 처음 써보는 만년필의 촉감은 마치 매끄러운 아스팔트 위를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 만년필 잉크의 색깔은 단 세 가지였다. 검은색, 파란색, 그리고 초록색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의 나는 유난히 초록색을 좋아했다. 만년필에 초록색 잉크를 넣어 하얀 노트에 좋아하는 시들을 적었다. 그 만년필로 나는 소월의 시로는 딱 한편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하고 적었던 것도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만년필을 잃어버렸다. 며칠이 지난 어느 봄날 오후, 내 짝이 옆 반에 가서 잃어버린 만년필을 훔쳐간 아이를 데리고 왔다. 열어 보니 초록색 잉크가 채워진 내 만년필이 틀림없는데, 훔쳐간 옆 반 아이가 제 것이라 우긴다는 거였다. 옆 반 아이는 억울하다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살펴보지 않아도 그건 내 만년필이 틀림없었다. 그때만 해도 그런 만년필은 귀하고 드물었다. 게다가 초록색 잉크를 넣은 만년필은 정말 내 것이 맞았다. 나는 그만 우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리며 ‘내 만년필이 아니며,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아이는 내 만년필을 제 것처럼 떳떳하게 들고 가버렸다. 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속까지야 누가 알랴.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나는 지금도 그때의 그 거짓말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봄이다. 초록색 잉크로 적은, 그때 그 시들이 눈앞에 선연하다.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