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북핵과 통일
2020년이 되면 북한의 핵탄두가 현재 15개 정도에서 200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북핵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와 국제사회가 20년 이상 기울인 온갖 노력이 허사가 되다니 허탈하고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하는 우리에게 핵탄두 100개로 무장한 북한 정권은 상상하기도 싫은 악몽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악몽이 5년 뒤에 현실이 된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우리는 발상을 전환하고 대담한 전략을 세워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핵 해결이 통일의 선결과제였다면, 이제는 통일이 북핵 해결의 궁극적 방도가 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평화통일이 성취되면 한반도의 비핵화는 필연적인 수순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북정책을 한 차원 높게 진화시키는 일이다.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는 통일의 필수조건이다. 누가 그 변화를 이끌 것인가. 북한 체제 엘리트 내부일 수도 있지만 북한 주민이 변화의 주역일 수밖에 없다.

이 관점에서 볼 때 ‘5·24 조치’는 일찍 넘겨버렸어야 할 낡은 페이지에 불과하다. 민간의 대북경제활동, 종교, 문화, 스포츠 그 밖의 인도적 활동은 모두 우리의 평화적 역량이 북한 사회로 흘러넘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활동으로 북한 정권에 일정한 현금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이는 본질이 아니다. 민간의 대북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보가 유입되고 북한 사회에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필연이고, 이를 통해 북한 주민의 정신적, 경제적 힘이 고양돼 그들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본질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등 북의 도발 때문에 북한 정권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민간의 교류협력을 차단하는 조치가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남과 북에 모두 정권이 바뀌고, 우리가 통일을 국정의 전면에 내세우는 상황에서 이 조치를 유지하는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가 북한의 사과를 요구하지만 사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전면적으로 북한 주민을 포용하는 대북정책을 설계해 추진할 때다. 경제, 문화, 종교, 스포츠, 시민 사회의 역량이 봇물처럼 북한 사회에 흘러들어가도록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북핵의 공포에 사로잡히거나 억지로 외면할 때가 아니다. 단호한 의지로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대담한 전략을 추진할 때다.

이인제 < 새누리당 최고위원·국회의원 ij@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