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부총리는 사람냄새 나는 의리의 돌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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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주목받는 최경환 부총리-김인호 신임 무역협회장의 '인연'
김인호 회장의 '인물평' 화제
김인호 전 경제수석 보좌관으로 모시던 최
"외환위기 죄 없다" 구명 운동…"진정한 교제는 그때부터 시작"
상사가 곤경 겪을 때도 현직 때처럼 공사 돌봐줘
김인호 회장의 '인물평' 화제
김인호 전 경제수석 보좌관으로 모시던 최
"외환위기 죄 없다" 구명 운동…"진정한 교제는 그때부터 시작"
상사가 곤경 겪을 때도 현직 때처럼 공사 돌봐줘
관가에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돌쇠 같은 의리’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신임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다. ‘돌쇠 같은 의리’는 김 회장이 3년 전 최 부총리를 두고 한 말이다.
김 회장이 경제수석 자리에 있을 때는 김영삼 정부 시절로 최 부총리는 당시 그를 모시는 보좌관이었다. 이제는 최 부총리가 경제 부처를 총괄하고 있는 가운데 김 회장이 무역정책을 측면 지원하는 정부 산하의 민간협회 수장에 오른 것이다. 두 사람 간 돌고 도는 각별한 인연이다.
○IMF 환란 속 맺어진 ‘의리’
김 회장은 옛 경제기획원 출신(행정고시 4회)으로 잘나가던 관료였다.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국장, 차관보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철도청장, 소비자보호원장,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경제수석으로 발탁됐다.
김 회장과 최 부총리의 인연은 상사와 부하의 관계로 시작됐다. 김 회장이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최 부총리(행시 22회)가 그 밑에 있었다. 경제수석에 올랐을 때도 최 부총리가 그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두 사람 간 인연이 끈끈해진 계기는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였다. 김 회장은 위기 발생의 책임을 지고 경제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고, 직무유기 혐의를 받아 기소되며 시련을 겪었다. 최 부총리가 직접 구명운동을 폈고, 김 회장은 2004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엔 김 회장이 최 부총리를 도왔다. 그는 3년 전 19대 국회의원 총선에 3선을 겨냥해 출마한 최 부총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람 냄새가 나는 탁월한 능력의 사람’이라는 내용의 인물평을 썼다. “공직에서 맺은 인연은 공직에서 물러날 때 끝나는 것이 상례지만 그(최경환)와의 진정한 교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나와 가깝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에 보일 정도의 불이익을 받을 것이 불 보듯 하던 그때, 나와 같이 일하고 가까웠던 많은 사람이 근처에 나타나기조차 꺼리던 그 시절, 그는 내가 현직에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나의 공사 간 어려운 일을 모두 맡아 처리해 주었다”고 회상했다.
○최 부총리의 ‘멘토’ 역할
김 회장은 최 부총리의 최대 강점을 ‘돌쇠 같은 의리’라고 표현했다. “경제 관료로서의 폭넓은 실무경험과 경제학자로서의 탁월한 전문성에도 원인이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일찍이 내가 보았던 그런 돌쇠 같은 의리와 깊이 있는 인간성에 바탕을 둔 친화력이 이룩한 성공적인 인간관계에 힘입은 바도 크다”며 최 부총리의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최 부총리에겐 김 회장이 멘토이자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한 인물이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6월 부총리 내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모셨던 김 수석이 외환위기 때 깨지고 당하는 것을 보면서 관료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김 회장도 “그가 전도양양한 관료의 길을 버리고 언론계에 투신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생 전환을 한 배경에는 나와의 관계도 일부 작용했으리라 생각하고 지금도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이 지난해 기재부 산하 중장기전략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선임됐을 때만 해도 관가에선 두 사람의 인연에 관심이 적었다. 한 중앙부처 국장은 “경제수석(차관급)을 지낸 김 회장이 최근 10여년 동안 이희범, 사공일, 한덕수 등 장관과 총리 출신이 맡았던 무역협회 수장으로 취임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며 “관료생활에서 최대 덕목은 인간관계라고 말하는 공무원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김 회장이 경제수석 자리에 있을 때는 김영삼 정부 시절로 최 부총리는 당시 그를 모시는 보좌관이었다. 이제는 최 부총리가 경제 부처를 총괄하고 있는 가운데 김 회장이 무역정책을 측면 지원하는 정부 산하의 민간협회 수장에 오른 것이다. 두 사람 간 돌고 도는 각별한 인연이다.
○IMF 환란 속 맺어진 ‘의리’
김 회장은 옛 경제기획원 출신(행정고시 4회)으로 잘나가던 관료였다.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국장, 차관보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철도청장, 소비자보호원장,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경제수석으로 발탁됐다.
김 회장과 최 부총리의 인연은 상사와 부하의 관계로 시작됐다. 김 회장이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최 부총리(행시 22회)가 그 밑에 있었다. 경제수석에 올랐을 때도 최 부총리가 그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두 사람 간 인연이 끈끈해진 계기는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였다. 김 회장은 위기 발생의 책임을 지고 경제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고, 직무유기 혐의를 받아 기소되며 시련을 겪었다. 최 부총리가 직접 구명운동을 폈고, 김 회장은 2004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엔 김 회장이 최 부총리를 도왔다. 그는 3년 전 19대 국회의원 총선에 3선을 겨냥해 출마한 최 부총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람 냄새가 나는 탁월한 능력의 사람’이라는 내용의 인물평을 썼다. “공직에서 맺은 인연은 공직에서 물러날 때 끝나는 것이 상례지만 그(최경환)와의 진정한 교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나와 가깝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에 보일 정도의 불이익을 받을 것이 불 보듯 하던 그때, 나와 같이 일하고 가까웠던 많은 사람이 근처에 나타나기조차 꺼리던 그 시절, 그는 내가 현직에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나의 공사 간 어려운 일을 모두 맡아 처리해 주었다”고 회상했다.
○최 부총리의 ‘멘토’ 역할
김 회장은 최 부총리의 최대 강점을 ‘돌쇠 같은 의리’라고 표현했다. “경제 관료로서의 폭넓은 실무경험과 경제학자로서의 탁월한 전문성에도 원인이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일찍이 내가 보았던 그런 돌쇠 같은 의리와 깊이 있는 인간성에 바탕을 둔 친화력이 이룩한 성공적인 인간관계에 힘입은 바도 크다”며 최 부총리의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최 부총리에겐 김 회장이 멘토이자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한 인물이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6월 부총리 내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모셨던 김 수석이 외환위기 때 깨지고 당하는 것을 보면서 관료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김 회장도 “그가 전도양양한 관료의 길을 버리고 언론계에 투신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생 전환을 한 배경에는 나와의 관계도 일부 작용했으리라 생각하고 지금도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이 지난해 기재부 산하 중장기전략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선임됐을 때만 해도 관가에선 두 사람의 인연에 관심이 적었다. 한 중앙부처 국장은 “경제수석(차관급)을 지낸 김 회장이 최근 10여년 동안 이희범, 사공일, 한덕수 등 장관과 총리 출신이 맡았던 무역협회 수장으로 취임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며 “관료생활에서 최대 덕목은 인간관계라고 말하는 공무원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