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1절 96주년, 한국인 자신에게 질문 던질 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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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96주년인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이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세 번째 3·1절 연설에서 박 대통령 발언의 기조는 큰 변함이 없다.
양국 관계가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역사인식에서 2차 대전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퇴행적 오류에 빠져 있는 일본의 책임이 클 것이다. 우리는 일본이 패전 70주년인 올해부터라도 역사인식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국 역시 과거 문제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핵문제를 포함해 외교 국방 경제 분야 현안이 양국 간에 산적해 있는데 수년째 일본의 반성만 촉구하고 있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비록 일본에 귀책사유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이는 결코 환영할 만한 사태 전개가 아니다.
3·1절은 온 국민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한 날이다. 그러나 3·1절은 근대 한국인이 처음으로 자기정체성을 인식한 가운데 세계를 향해 두 발로 일어선 날이기도 하다.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근 10년 만에 한국이 스스로 민족의 자아를 갖게 된 날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양반과 상놈의 이분법 아래, 분노와 증오만 안팎으로 얽혔을 뿐이다. 그런 오욕을 떨치고 근대인으로서의 한국인이 그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3·1운동이었다. 항일에 더해 근대 한국인의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됐던 것이다.
지금 한국은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버젓한 근대 국가가 됐다. 그러나 과연 한국인의 내면적 의식은 얼마나 근대화됐는가. 더구나 아직 남북으로 분단돼 온전한 민족국가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식에서도 서구적 성숙보다는 남미형 포퓰리즘에 더욱 함몰되고 있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단계다. 3·1절 100주년이 불과 몇 년 앞이다.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점이다. 일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양국 관계가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역사인식에서 2차 대전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퇴행적 오류에 빠져 있는 일본의 책임이 클 것이다. 우리는 일본이 패전 70주년인 올해부터라도 역사인식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국 역시 과거 문제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핵문제를 포함해 외교 국방 경제 분야 현안이 양국 간에 산적해 있는데 수년째 일본의 반성만 촉구하고 있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비록 일본에 귀책사유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이는 결코 환영할 만한 사태 전개가 아니다.
3·1절은 온 국민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한 날이다. 그러나 3·1절은 근대 한국인이 처음으로 자기정체성을 인식한 가운데 세계를 향해 두 발로 일어선 날이기도 하다.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근 10년 만에 한국이 스스로 민족의 자아를 갖게 된 날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양반과 상놈의 이분법 아래, 분노와 증오만 안팎으로 얽혔을 뿐이다. 그런 오욕을 떨치고 근대인으로서의 한국인이 그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3·1운동이었다. 항일에 더해 근대 한국인의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됐던 것이다.
지금 한국은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버젓한 근대 국가가 됐다. 그러나 과연 한국인의 내면적 의식은 얼마나 근대화됐는가. 더구나 아직 남북으로 분단돼 온전한 민족국가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식에서도 서구적 성숙보다는 남미형 포퓰리즘에 더욱 함몰되고 있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단계다. 3·1절 100주년이 불과 몇 년 앞이다.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점이다. 일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