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야당 지도자였지만 지금은 반체제 인사일 따름이다.”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사진)가 지난달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틀 뒤 그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200m 떨어진 지점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 개입을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집회를 하루 앞두고서다.

러시아 당국은 친 러시아 성향 우크라이나 반군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까지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고 범인을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과 외신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나 그의 측근을 배후로 의심하고 있다. 2000년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반정부 인사의 피살이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03년 4월 야당인 자유러시아당 의원 세르게이 유센코프를 시작으로 2009년 7월 인권운동가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까지 6명의 야당 정치인과 기자, 인권운동가가 피살됐다. 반정부 성향의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 유리 셰코치힌이 독살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총격으로 사망했다.

러시아 정부는 넴초프 피살과 관련해 수사위원회를 꾸리고 범인을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검거 가능성은 낮다. 2009년 1월 스타니슬라프 마르켈로프 변호사와 아나스타샤 바부로바 노바야 가제타 기자가 함께 피살된 사건의 범인이 극우단체 소속 청년들로 밝혀진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범인을 찾지 못했다.

외신은 이번에 피살된 넴초프가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이던 시절 제1부총리와 에너지부장관을 지내며 옐친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FT는 “반체제 인사의 피살 위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인사들의 피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