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신임 국무총리와 함께 박근혜 정부의 새 내각이 출범하면서 ‘장수(長壽) 장관 5인’이 부러움을 사고 있다. 윤병세(외교부), 황교안(법무부), 이동필(농림축산식품부), 윤상직(산업통상자원부), 윤성규(환경부) 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초대 내각부터 줄곧 자리를 지킨 이들은 오는 11일이면 취임 2주년을 맞는다. 유독 인사 잡음이 많던 정부 내에서 맡은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하며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업무 열정, 복심(腹心), 소통 능력, 현장 돌파력, 뚝심 등 이들의 ‘롱런’ 비결은 저마다 다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 열정
밤늦게까지 회의…발표문도 손수 챙겨


윤병세 외교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밤낮 가리지 않는 ‘워커홀릭(일벌레)’으로 불린다. 재임 초기에는 밤늦게까지 회의를 진행하는 일이 잦아 ‘올빼미’라는 별명이 붙었다. 외교부 공무원들은 이 같은 심야회의를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 ‘콘클라베’나 ‘광화문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비유한다. 윤 장관의 주문이 많아 업무 강도가 ‘역대 최고’라고 하소연한다.

윤 장관은 특유의 꼼꼼함과 세심함을 갖추고 있다. 외교부가 발표하는 자료의 따옴표, 마침표까지 고칠 정도로 세부사항을 손수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첩공주’로까지 불리는 박 대통령의 디테일한 스타일과 맞아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도 자주 인용한다.

윤 장관은 참신한 해법이 나올 때까지 다양한 의견을 듣는 브레인스토밍(난상토론)을 즐긴다. 감정 노출을 자제하는 것도 박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다. 장관이 화내는 것을 본 직원이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 복심
안정적인 법무 행정…무리없는 검찰 지휘


황교안 법무부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년간 무리 없이 법무 행정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다. 검찰 지휘 관련해서도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법무부 장관은 자리 특성상 장수 장관이 드물었다.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2년을 넘긴 사람은 44대 안우만 전 장관(1994년 12월~1997년 3월)이 유일했다. 황 장관은 재임 기간 기록을 경신할 기세다.

황 장관은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대통령이 신임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가 한때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국정 참모로서 대통령의 마음에 쏙 들게 법무 행정을 하는 게 장수 비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말하는 게 진중해 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인사 등을 잡음 없이 처리하는 등 균형감 있는 검찰 행정도 잘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정부 입장에서 큰 성과인 통합진보당 해산을 이끌어준 점 역시 높이 평가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 - 소통
FTA 등 시장개방 때 진정성 있게 농민 설득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특유의 진정성이 롱런 비결로 꼽힌다. 지난해 쌀 관세화(시장 개방),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시장 개방 속에서 이 장관의 진정성 담긴 소통 능력은 빛을 발했다. 이 장관은 개방에 따른 피해를 걱정하는 농업단체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나 미래 농업 경제를 위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설득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 해 전만 해도 청와대는 잇단 시장 개방 속에서 과거 한·미 FTA 때와 같은 농민 반발을 가장 걱정했다”며 “이 장관이 농업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묵묵하게 농민을 설득한 결과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고 말했다.

관료가 아닌 연구원 출신인 이 장관은 ‘사심이 없는 사람’으로 통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거 출마를 목표로 지역구 관리에 힘쓴 장관들도 있었다”며 “이 장관은 사심 없이 농업, 농촌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점이 정부와 농업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 - 현장
큰 사건 터질 때마다 바로 짐 꾸려 출발


윤상직 산업부 장관
윤상직 산업부 장관
한·중 FTA 타결을 주도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현장 돌파형’이다. 직접 발로 뛰는 걸 좋아해 큰 사건이 터지면 비서나 담당 실장이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바로 짐을 꾸려 현장으로 출발한다. 지난해 말 월성1호기, 고리1·2호기의 도면이 공개된 ‘원자력발전소 해킹 사건’이 터졌을 때는 크리스마스에 고리1호기 현장을 방문해 직원들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지난해 7월 여름휴가 때도 휴가기간 닷새 중 이틀은 본인이 자청해 송전탑 건설 갈등으로 시끄러운 밀양을 방문했다.

현 정부 ‘실세’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미국 위스콘신대 동문에다 고향(경북 경산)까지 같아 친분이 깊다는 점이 윤 장관의 롱런 비결이 아니냐는 얘기도 심심치않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산업부에선 윤 장관의 내공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일축한다.

산업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윤 장관은 산업부 내 요직을 두루 거쳐 현안에 대한 이해가 깊다”며 “박 대통령이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에 막힘이 없는 모습을 보고 ‘내공이 세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 - 뚝심
한번 목표로 한 일 끝까지 물고 늘어져


윤성규 환경부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목표한 일은 반드시 이뤄내고 마는 ‘뚝심형’ 리더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업무보고 회의 때 장관들에게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나갈 때까지 놓지 않는 진돗개처럼 일하라”며 ‘진돗개 정신’을 강조한 것과도 맞아떨어진다. 지난해 11월 미세먼지 대책과 사업 추진을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양자회담에서도 이 같은 스타일이 잘 드러났다.

통상 장관급 양자회담은 한 시간가량 진행된다. 하지만 윤 장관은 이날 중국 환경 시장에 국내 업체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미션을 완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지만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윤 장관은 “조금만 더 이야기하자”며 저우성셴 중국 환경보호부 장관을 붙잡았다.

결국 이날 양자회담은 이례적으로 5시간30분간 이어졌다. 윤 장관은 중국 제철소에 한국 기술을 적용한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설치·운영하겠다는 공동 합의문을 이끌어냈다.

조진형/심성미/전예진/양병훈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