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이 크게 늘고 있다. 우회상장 수단인 스팩은 올 들어 벌써 5개가 ‘증시 입성 신청서’를 냈다. 일반 기업과의 합병을 목적으로 매출도 없는 상태로 상장돼 ‘앙꼬없는 찐빵’으로 불리는 스팩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지고 있다. 우량 기업과 합병에 성공, 공모가의 7~8배 이상으로 주가가 뛰는 ‘스팩 대박’이 터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우회상장 추진 기업은 상장요건을 갖추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주가가 예상보다 오르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스펙' 말고 '스팩' 보는 증시
○잇단 대박 스토리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상장심사를 청구한 5개 기업이 모두 스팩이었다. 지난 2일 하루에만 유진ACPC스팩2호, 하나머스트스팩4호 등 2개 스팩이 거래소에 청구서를 냈다. 지난달에는 한화에이스스팩1호가, 1월에는 KB제7호스팩과 KTB스팩2호가 상장심사를 청구했다. 이 추세라면 2009년 말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많은 26개가 상장한 작년 기록을 깰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는 ‘대박 스토리’가 잇따라 터지면서 투자자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콜마비앤에이치와 합병, 지난달 3일 콜마비앤에이치로 재상장된 미래에셋제2호스팩은 4일 현재 공모가(2000원)의 7배가 넘는 1만4300원으로 치솟았다. 작년 11월 디에이치피코리아와 합병한 하이스팩1호 역시 공모가(2000원)의 8배 수준인 1만5250원, 재작년 10월 선데이토즈와 합병한 하나그린스팩은 1만5900원으로 크게 올라있다. 게다가 상장 후 3년 내에 합병에 실패, 청산하더라도 투자원금과 연 2%의 이자를 돌려받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증권사들도 경쟁적으로 스팩을 설립하고 있다. 상장 수수료뿐 아니라 합병 수수료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스팩을 설립하면서 발기인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합병 후 주가가 오르면 보유 지분을 팔아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다. KB투자증권은 지난해 KB스팩1호를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알서포트와 합병시키면서 총 35억원의 수익을 냈다. 일반 상장 주관사를 맡았던 때보다 5배가량의 수익을 낸 것이다.

○커지는 위험요소

스팩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다음달 1일부터는 스팩과 합병하려는 비상장사는 지정감사인을 둬야 한다. 합병 기간이 수개월가량 길어지는 데다 감사비용도 기존의 3~4배로 오를 전망이다. 이는 우회상장하려는 업체는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상장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합병 상장 후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 내용이 알려진 것보다 좋지 않거나, 합병 전 스팩 주가가 너무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키움스팩1호와 2013년 9월 합병한 한일진공은 이후 주가가 줄곧 하락해 4일 현재 공모가(2000원) 대비 39.5% 하락한 1210원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스팩이 늘면 비상장사들을 놓고 경쟁이 치열해져 스팩 투자자에게 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합병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전 정보 유출로 시장의 물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하나머스트스팩3호, 미래에셋제2호스팩, 교보위드스팩 등은 합병계획을 발표하기 이전에 주가가 급등해 사전 정보 유출 의혹을 받았다. 지난달 4일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미공개 정보이용 혐의로 A스팩의 전 대표이사 B씨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임도원/허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