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82년.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그룹 회장·사진)은 당시 27세의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과장이었다. 선친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뜻에 따라 첫 직장인 외환은행을 그만두고 그룹 계열사인 동산토건에 입사한 직후였다.

양복을 입고 번듯한 사무실에서 근무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그의 첫 근무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그곳은 결과적으로 그의 첫 경영수업 무대가 됐다. 박 회장은 이후 1년 넘게 리야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공사현장과 아라아르 인근 국경수비대 숙소 건설현장의 관리담당으로 일했다.

한·사우디 비즈니스포럼 참석차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박 회장이 33년 전 ‘직장’을 찾은 소회를 밝혔다. 박 회장은 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대한상의 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파견 근무 때 얘기를 꺼냈다.

박 회장은 “사우디로 파견될 때 아들(박서원 오리콤 크리에이티브 총괄 부사장)이 세 살이었는데, 국제전화 너머로 ‘아빠’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며 “당시 공사현장에 나와 있던 직원 대부분이 그랬다”고 전했다. 이어 “(외롭고 힘들었지만) 그때는 다들 ‘달러를 번다’는 생각에 그런 삶을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당시 리야드는 차를 타고 돌아봐도 볼 만한 게 없던 도시였는데, 지금은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변했다”며 “그때 시내에 전자제품을 팔던 거리를 우리끼리 ‘청계천 세운상가’라고 불렀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오늘의 사우디아라비아는 대한민국 기업인과 근로자의 땀을 빼놓고는 얘기하기 어렵다”며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 일했던 근로자가 없었다면 한국 경제가 오늘에 이르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일달러로 경제 기적을 이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 회장은 이날 열린 한·사우디 비즈니스포럼에서도 “한국은 1970년대 사우디의 인프라 건설에 참여해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며 “한국인들은 사우디에 대해 우정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