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의료의 국제화 시대
“교수님! 다음 대기 환아는 앤드루이고 그다음은 하마드입니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대 어린이병원 진료실의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야말로 의료의 국제화 시대다. 지난달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만수르 빈 자예드 알나얀 부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서울대병원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 개원식이 열렸다. 미래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으로 서비스 산업, 특히 의료 분야가 중요하다고 10년 넘게 말만 하다가 이제야 가시적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는 러시아 중국 몽골 그리고 중동국가에서 오는 환자들의 치료 성공 사례가 대형병원뿐 아니라 중소 전문병원에도 넘쳐 난다. 중동에서 온 환자와 보호자는 독일 영국 등지를 다 다녀봐도 만족하지 못했는데 한국에서 치료받고 매우 좋아졌다며 계속 한국에서 치료받고 싶다고 한다. 병원비 싸고 의료진 수준 높고, 각종 첨단 검사 장비 등 시설면에서도 의료 선진국 못지않으니 만족할 만도 하다.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중동 국가 등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환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1인실, 특실이 비싸지는 않지만 시설이 만족스럽지 않고 담당 의사와 면담시간이 짧으며, 간호 및 재활 치료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인 것 같다. 본국에 돌아갈 때 필요한 미국이나 유럽국가 수준의 자세한 영문 소견서가 부족하다는 것도 심각한 불만 사항이다.

외국 환자들이 외래 진료를 볼 때 의사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래 대기하는 국내 환자들 사이에 외국인 환자가 끼어 있으면 통역하느라 진료시간이 길어져 환자들 보기가 민망하고 미안하다. 우리 국민은 짧은 진료시간에 쫓기듯 진료하는데 외국인만 국제 수준의 적정 진료로 길게 진료해 주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외국인 전용병원과 병상을 설치해 진료 수술 간호 물리치료 등 모든 의료서비스를 국제 기준에 맞게 외국인에게만 제공할지, 아니면 우리 국민에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수준도 국제 기준에 맞게 할지 심각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작년 국민건강보험 흑자가 4조원이 넘었다고 한다. 무상 보육, 무상 급식이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그에 못지않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개선에 대한 논의와 실천의 부재가 아쉽기만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 국민은 아프면 충분한 진료 시간 동안 의사와 만나고, 병원에 입원하면 간병 걱정 없이 포괄 간호 서비스를 제공 받는 등 충분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는 시대가 아닌가!

동남아 일부 국가의 국제병원은 그 나라 국민과는 관계없이 단지 경제적으로 부유한 외국인에게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그야말로 외화벌이 의료산업에 나서고 있다. 그들과 한국 의료산업 국제화의 차이라면, 외국인과 대등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자국 국민에게도 제공한다는 게 대원칙이 돼야 할 것이다.

방문석 <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 msbang@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