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도다리쑥국
산들거리는 봄바람 때문일까. 도다리쑥국 생각이 간절했다. 30분 일찍 출발했지만 벌써 줄이 길다. 한동안 기다려서야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만난 봄도다리와 햇쑥의 향미! 뽀오얀 국물에 부드러운 살, 그 위에 올라 앉은 연초록 쑥잎의 향기…. 바람난 봄처녀처럼 상큼하고, 은은하며, 담백하고, 쌉싸름한 뒷맛까지 감도는 것이 도다리쑥국의 진짜 맛이다.

하얀 속살과 파릇한 쑥의 자태에 눈이 먼저 호사한다. 싱그러운 향미는 코를 자극하고, 바다와 들판의 미감이 혀를 휘감는다. 어린 날 추억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숟가락에까지 배어나는 봄 향기는 온몸을 보듬어 안는다. 그러니 도다리쑥국맛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섯가지다. 눈과 코, 혀를 지나 가슴, 몸 전체로 퍼져가는 오미(五味)의 향취에 여운마저 길다.

가자밋과인 도다리는 대부분 자연산이다. 성장 과정이 3~4년이나 걸려 양식이 쉽지 않다. 일부 강도다리만 따로 키울 뿐이다. 생김새는 납작한 광어(넙치)와 닮았다. 둘을 구별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광어 눈은 왼쪽, 도다리 눈은 오른쪽에 쏠려 있다. ‘좌광 우도’로 기억하면 된다. 광어는 입이 더 크고 날카로운 이빨도 있다. 도다리에는 이빨이 없다. 살은 광어보다 진한 분홍색을 띤다.

도다리는 고급횟감으로도 인기다. 육질의 탄력성이 아주 좋아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단백질이 우수한 반면 지방과 열량은 적어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간기능 향상에도 좋아 주당들의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갓 뜯은 쑥은 비린 맛을 없애 주고 국물을 개운하게 한다. 쑥에는 비타민 A와 C, 철분이 많아 피를 맑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7년 앓은 병 3년 묵은 쑥 먹고 고쳤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어릴 적 어머니는 멸치 육수에 된장을 풀고 도다리를 넣은 다음 살이 익을 때쯤 쑥과 다진 마늘을 살짝 얹어 넣었다. 옆집 식구들은 육수 대신 쌀뜨물을 쓰기도 했다. 북쪽 사람들은 살과 뼈가 연한 물가자미로 가자미식해를 만들어 먹었다. 원래는 함경도 음식이지만 전쟁 후 피란민들에 의해 남쪽에 전파됐다.

시인 백석은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고 노래했는데, 이유는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허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청계천을 지나 교보문고까지 가는 동안에도 몸에서 도다리쑥국 향이 나는 듯했다. 어디선가 개구리가 뛰어나올 것 같은 봄의 초입. 바람에 손등을 문지르다 보니, 어느 새 벌써 경칩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