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경하듯 반복한 게 단색화…드로잉은 감성 블랙박스"
“그림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있죠. 어떤 화가라도 시대의 아픈 상처를 작품에 반영하려 하거든요. 1970년대 단색화 작가는 당시 민중 작가들로부터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사실 현실을 외면한 게 아니라 말없이 시대적 아픔을 화면에 아우른 거예요.”

오는 11~31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박서보, 에스키스 드로잉’전을 여는 한국 단색화(모노크롬)의 선두주자 박서보 화백(83·사진)은 “한때는 단색화도 그림이냐며 멸시를 받았지만 승려가 반복해서 독경하듯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니 시선이 달라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묘법(描法)의 화가’로 불리는 박 화백은 광복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겪으며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50년대 불모지였던 추상미술을 소개하고, 화업 내내 한국 앵포르멜(서정적 추상주의 경향) 운동에 앞장서 왔다. 1962년 개인전에서 추상화 ‘원형질’ 시리즈를 발표해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를 일반화시킬 정도로 주목받았고 이후 청색과 적색으로 기하학적인 ‘유전질’ 연작을 발표했다.

그림은 자신을 비워내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그가 단색화 ‘묘법’ 시리즈를 시작한 건 1967년쯤이다. 전통 한지를 물감에 풀어 갠 것을 화폭에 올린 다음 연필이나 자로 수없이 긋고 밀어내 밭고랑 같은 요철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작가가 “나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형태조차도”라고 말할 정도로 특정한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림의 요체로 꼽히는 촉각성과 정신성, 행위성은 하나의 공간에서 겹치거나 서로 맞물리며 궁극의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캔버스에 한지를 덧붙였고, 2000년 무렵부터는 색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8호 크기 작품 ‘묘법 No, 47-74’(37.7×45㎝)는 작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추정가(400만원)의 18배에 달하는 7296만원에 팔렸다.

박 화백은 무엇보다 묘법 속에 조형의 기본형이 있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화가의 상상이 막 움트는 ‘에스키스 드로잉’(작업을 하기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드로잉은 작가의 기술을 시험하는 연습장이며 감정, 생각을 담은 메모장입니다. 거칠고 솔직하고 왕성한 작가의 예술혼이 담겨 있기에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죠.”

박 화백은 드로잉을 ‘감성 블랙박스’라고 불렀다. “일종의 건축적 밑그림에 해당합니다. 1996년부터 작은 단위의 메모지를 만든 뒤 커다란 방안지(모눈종이)에 정교하게 수정하며 옮겨 그리는 방법으로 작업하죠.”

필요한 부분의 상하좌우에 몇 ㎝ 간격이 필요하다는 수치가 단정하게 쓰여 있고, 선과 면의 구분도 보인다. 사용한 도구는 평판 크레용, 연필, 수정액 펜이다. 회화의 치밀성과 정교성, 완결성 등을 보여주자는 생각에 2001년에는 화집 ‘에스키스 드로잉’을 출간했다.

밭이랑처럼 고랑 사이에 물감을 높게 쌓아올린 드로잉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한강에 줄줄이 들어선 다리의 교각이라고 생각하고 그렸어요. 그림의 원동력을 상징하지요. 제 드로잉 작품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면 좋겠습니다.” (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