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성공 기념패' 160개 보유한 IB업계 '산증인'
맥쿼리 최고령 은퇴 후 이달 한양대 석좌교수로
리더십 발휘 10년 이상 걸려…장기성과 중시해야
외부의 인사간섭이 금융산업 발전 걸림돌
윤 전 회장은 “한국 금융회사들은 자기 힘으로만 성장하는 데 너무 매달리지 말고 과감하게 해외 기업을 인수해 노하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장수하는 스타 최고경영자(CEO)가 나와야 한국 금융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며 “금융회사 인사는 외부의 간섭없이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IB개념이 생소할 때 입문하셨습니다.
“(웃으며) 외국 금융회사에 다니는 게 멋있어 보여서 그랬죠. 대학 졸업 후 농협에 취직했는데, 어느 날 신문에서 영국 라자드가 ‘머천트 뱅커(merchant banker)’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어요. 1년간 라자드 본사에서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 IB 관련 교육을 받고 나니 ‘이게 내가 평생 할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이 당시 산업화 초기 단계였던 만큼 조만간 자본시장이 태동하리라고 봤습니다.”
▷법학도로 금융회사에 입사한 이유가 있습니까.
“고시에 큰 흥미가 없었어요. 시험을 보긴 했지만 낙방했죠. 또 보기는 싫었어요. 대학을 갓 졸업한 1972년에 농협에 입사했습니다. 부친이 농협에 계셔서 농협이 제일 좋은 회사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시작한 일이 40년이 넘었군요.
“물러나기로 결정한 뒤인 작년 말 맥쿼리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고위 간부들이 모여 세계 경제 전망을 논의하는 콘퍼런스가 홍콩에서 열렸습니다. 회의가 끝날 때쯤 제레니 워넷 맥쿼리캐피탈 회장이 저를 단상으로 부르더군요. 그러고는 ‘전 세계에 있는 2만여명의 맥쿼리 직원 중 그룹 회장보다 나이가 많은 최고령 은퇴자가 여기 있다’며 저를 소개하더군요. 맥쿼리 각국 대표들의 박수를 받았죠.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40대 후반에 외국계 회사로 옮겼습니다.
“제가 한국종합금융에서 베어링증권으로 이직한 게 46세 때였습니다. IB는 산업 환경이 워낙 급박하게 변하는 데다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야 할 일이 많다 보니 직원 은퇴 시점도 빠르죠. 특히 외국계에서 그런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외국계에서 일하던 사람이 40대 후반이 되면 국내 증권사로 이직하는데, 저는 거꾸로 갔습니다. 그리고 24년을 더 일했습니다. 40대면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재미있을 때인데 스스로 퇴물 취급을 하는 게 싫었습니다.”
▷장수 비결은 뭡니까.
“IB 분야에 있다 보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M&A를 성사시킨 고객사의 경쟁 기업을 내일 찾아가 거래를 제안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하려면 해서는 안 될 일이죠. 당장 올해 6~7곳의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보다 한 곳이라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해 평생 고객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합니다.
“관행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인사 관행부터 바꿔야죠. 단기 성과에 연연하면 장수 CEO가 안 나옵니다. 아무리 똑똑한 경영자여도 리더십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려면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시스템을 만들 수 있거든요. 한국 금융은 워낙 임기가 짧아 일을 시작하자마자 그만둬야 하는 꼴입니다.”
▷실적이 나쁘면 교체해야 하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아예 ‘이 자리는 몇 년짜리’ 이런 식으로 정해놓고 정부 등 외부에서 간섭하는 게 문제입니다. 윗사람이 바뀌면 밑에까지 연쇄적인 이동이 생기죠. 금융회사 인사는 외부압력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한국의 주요 금융회사 CEO 중 세 번째 임기를 맞은 사람이 누가 있나요. 금융 개혁, 금융 경쟁력 강화는 인사 간섭을 중단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정부의 금융정책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금융 허브만 해도 그래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지역을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서울 여의도와 용산, 인천 송도, 심지어 제주도까지. 금융은 사회의 일부이지, 어느 지역에 가두리를 쳐놓고 육성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 전반의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지리적으로만 접근합니다.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기 때문이죠.”
▷금융인의 필수 덕목은 무엇입니까.
“신뢰죠. 예전에 모 기업 매각 자문을 맡았을 때 어떤 대기업 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업을 꼭 사고 싶은데 경쟁사들이 얼마를 썼느냐’고 묻는 전화였죠. ‘알려주면 평생 후사하겠다’고 하더군요. 그 회장만 잡아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거절했습니다. 거래의 공정성 때문이죠. IB맨의 최고 자산은 돈을 얼마 벌었다거나 거래를 얼마나 많이 수주했는지가 아니라, 고객에게서 얼마나 신뢰를 얻었느냐에 있습니다. 나중에 그 회장이 제가 자문을 맡은 회사의 회장을 만나 ‘당신, 최고의 자문사를 구했다’고 얘기했다는 소리를 듣고 뿌듯했습니다.”
▷한국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금융은 사람 장사라고 합니다. IB는 더 그래요. 어찌 보면 큰 투자가 필요 없는 산업이죠. 그래서 금융 글로벌화의 시작은 IB여야 합니다. 다만 금융업의 이중적인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금융회사는 인허가가 필요한 만큼 현지화가 필수죠. 반면 상품과 서비스는 세계적으로 통하는 국제화가 필요합니다. 양쪽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해법은 현지 금융회사 M&A입니다.”
▷한국 금융회사의 해외 M&A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2000년 맥쿼리는 KB 신한 우리금융그룹 등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진출했습니다. 한국 금융시장을 가장 잘아는 회사와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구축해 한국 시장을 배우고 영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뒤에야 홀로서기에 나섰습니다. 현지 금융회사와 제휴하면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 한국 금융회사가 진출해야 할 국가에는 골드만삭스 등 굴지의 금융회사들이 이미 터를 닦아놨습니다. 현지 파트너와 힘을 합쳐야죠.”
▷글로벌화보다 지역화가 우선이란 말들을 합니다.
“맞습니다. 맥쿼리도 인프라 투자 등 가장 자신있는 분야를 내세워 아시아부터 공략했습니다. 아시아에 자리를 잡은 다음엔 미국과 영국에 지역 거점을 만들었고, 이들 지역 거점을 토대로 남미와 유럽에 진출했습니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전 세계에서 8개 금융회사를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습니다. 1969년 설립한 맥쿼리가 50년도 안돼 글로벌 금융회사로 성장한 비결입니다.”
▷은퇴 이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4월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앞만 보고 살아온 내 삶을 돌아보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도전할지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두 달여 동안 900㎞가량을 걷는 길인데, 동반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원래 박병원 전 은행연합회장과 같이 갈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맡게 돼서…. 하하.”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습니다.
“요새 젊은이들은 우리 때보다 영어도 잘하고 시각도 훨씬 글로벌화돼 있습니다. 선배들의 도움과 노력만 곁들인다면 한국 금융산업을 세계로 이끌 주역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제 노하우를 전해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윤경희 前 회장은…
1976년 한국종합금융에 입사해 한국맥쿼리캐피탈 회장을 거쳐 지난해 은퇴하기까지 40년 가까이 IB에서 한우물을 팠다. 한국종합금융에 있던 시절 해외 기업과 한국 기업 간 합작사 설립을 통한 외자 유치 거래를 잇따라 성사시키며 주목받았다. 이 공로로 한국경제신문이 제정한 다산금융인상에서 첫 번째 금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존 워커 한국맥쿼리그룹 회장은 윤 전 회장에 대해 “글로벌 맥쿼리그룹을 통틀어 가장 많은 160개의 ‘툼스톤’(거래 성공을 기념해 고객사가 자문사에 주는 기념패)을 가진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2003년 시집 ‘어둠 속에 눈을 뜬들 무엇이 보이랴’를 출간하며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1947년 충북 옥천 출생 △성북고(현 홍익대사대부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한국종합금융 이사 △베어링증권 이사 △ING베어링증권 한국대표 △ABN암로증권 한국대표 △한국맥쿼리캐피탈 회장
고경봉/정영효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