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생산성 낮추면서 임금 올리자는 정부
얼마 전까지 경제 성장보다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정부와 정치권이 갑자기 내수 활성화를 해야 한다며 소득 증대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소득 증대는 내수 활성화의 결과지 수단이 아니다.

가계소득 증대 정책은 쉽게 말해 소득 있는 사람들의 소득을 더 올려 주자는 것이다. 소득이 없는 사람들은 그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 정책은 경기부양 효과는 별로 없이 소득 분배만 악화시킬 것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도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에게만 혜택이 간다. 그나마 최저임금을 받고 사는 저임금 근로자들의 일부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내수가 회복되고 소득 분배가 개선된다면 왜 진작 그렇게 안 했을까. 정책이 너무 즉흥적이고 비전문적이다.

임금과 고용비용을 올려서 생산과 고용을 늘릴 수는 없다. 그런 경제는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정치권이 추진하는 소득 증대 정책은 그 아름다운 명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줄이고 소득 분배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개혁 논의도 그 내용은 대부분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 비정규직 보호,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은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지금 한국에서 일자리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 사람들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인가.

성장률을 높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만들기가 쉬운 일이었다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고실업에 이렇게 오래 고통을 겪을 리 없다. 경제정책의 최대 과제이자 경제학의 최대 난제가 바로 일자리 창출이다.

이런 어려운 문제가 정치논리와 비전문적 처방의 노조 저항 때문에 그나마 더 어렵게 되고 있다. 일자리를 지키고 만드는 데 왕도나 묘방은 없다. 일자리는 일거리가 있어야 만들어진다. 그런데 일거리가 늘어도 일자리가 안 생기는 이유는 기업들이 사람 쓰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은 자명하다. 일거리를 늘리고 기업들이 사람 쓰는 것을 꺼리지 않도록 해주면 된다.

근로자가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그 사람을 고용하는 비용보다 크면 기업들은 고용하지 말라고 해도 고용할 것이다. 지금 기업들이 사람 쓰는 것을 주저하는 것은 바로 이 부등식이 반대로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고용된 사람들에 대한 혜택을 줄이지 않고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결국 생산성 증가만이 일자리를 늘린다. 이 원리를 무시한 어떤 노·사·정 합의나 소득 증대 정책도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서 검토하는 각종 고용 관련 규제와 정책은 오히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인건비를 올리고 노동생산성을 낮추는 정책들이다. 어떻게 더 생산하지 않고 더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일 덜하고도 더 먹을 수 있다고 우기는, 또는 그렇게 해주겠다는 괴담이 판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도 고쳐져야 하고, 최저임금 근로자의 생활수준도 개선돼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차별과 비정규직을 불법화하고 임금을 강제로 인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시장에 공급이 과잉인 상태에서 아무리 법과 규제로 임금 인상, 차별 시정, 비정규직 해소를 강요해 봤자 더 은밀한 형태로 차별과 불완전 고용은 나타날 것이다.

정치논리나 정부규제로는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고 소득은 시장거래를 통해 얻는 것이다. 온갖 규제로 생산비를 높이고, 투자를 억제하고, 시장거래를 규제하면 그만큼 일자리와 소득창출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한 원리를 외면하고 검증되지 않은 편법으로 경기를 활성화하려 하니 일이 더 꼬이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도 내수 활성화도 정공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려운 문제에 쉬운 해법이 있을 리 없다. 쉽고 달콤한 처방일수록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김종석 < 홍익대 경영대학장·경제학 kim0032@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