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포노 사피엔스
미디어 기술이 개인과 사회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주장한 학자는 마셜 맥루한이다. 그는 16세기 활자매체의 발명과 인쇄산업이 개인주의와 내셔널리즘을 만들었다면서 미디어의 파급력을 강조했다. 스티브 잡스도 이런 미디어의 잠재력을 분명히 읽었다.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이면서 이것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얘기할 때 이미 미디어가 인류에게 끼치는 힘과 세상의 변화를 충분히 예측했던 것이다.

스마트폰은 그 뒤 불과 8년 만에 세계 성인의 50%인 20억명이 사용하고 있다. 2020년까지 그 숫자는 30억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인 북한에서조차 인구의 10%가 휴대폰을 갖고 있어 북한 당국이 이들과 전쟁을 벌일 정도다. 실로 엄청난 혁명이다. 인류가 농업혁명에 5000년, 산업혁명에 200년, 컴퓨터 디지털 혁명에 30년이 걸렸지만 스마트 혁명은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호모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인간)에 빗대 이를 ‘포노 사피엔스(phono-sapiens·지혜가 있는 전화기)’로 부른다.

포노 사피엔스는 인류에게 시공간의 제약을 크게 완화시켰으며 지역적 정보비대칭으로 인한 폐단을 크게 줄였다. 모든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으면 초조해하거나 불안을 느끼는 노모포비아(no mobile-phobia의 준말)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휴대전화가 손에서 떨어지면 5분도 채 버티지 못하는 것이 노모포비아 현상이다. 영국 보안전문업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노모포비아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 소유자의 80%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15분 이내에 스마트폰으로 문자와 뉴스를 확인한다는 보고도 있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의 ‘핸드폰찾기콜센터’가 1869명을 대상으로 최근 벌인 설문조사에서 휴대전화를 분실한 뒤 1주일 이상 기다리기 어렵다고 응답한 사람이 56.1%(1049명)로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하루도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게 현대인들이다. 마음의 구속이라고 할까. 사람과의 소통보다 기계와의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러다 인간의 마음까지 기계에 빼앗기는 것이 아닐까. 감정의 인터넷이라는 사물인터넷도 이미 인류에게 성큼 다가와 있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