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김종해 (1941~)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욱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여기 지하철 플랫폼에 홀로 서서 사랑을 찾아가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외사랑, 사랑을 향한 그의 모습은 조금 고집스럽고 쓸쓸해 보이지만 이 또한 아름다운 삶의 한순간이겠지요. 사랑을 새로 품어보기에 따뜻한 계절, 봄이 오고 있습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