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잉 지잉.’

정보기술(IT) 관련 대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는 휴대폰으로 부장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지 못한다. ‘밥 먹으러 갑시다’라는 수신 메시지 때문이 아니다. 발신자 이름이 ‘멍청이1’로 돼 있어서다. 김 대리는 이렇게 직장 상사들의 카톡 이름을 멍청이1, 멍청이2 식으로 올려놨다. 그는 그들에게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며 ‘작은’ 희열을 느낀다.

직장인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스트레스는 대부분 일보다는 사람 관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렇다고 상사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는 쉽지 않다. 쌓아두고 살 수도 없다. 어떻게든 풀어야 할 상사로부터의 스트레스. 그래서 소심한 김과장 이대리들의 작은 복수가 시작된다.

◆싫어하는 음식을 단골 회식 메뉴로

식욕은 인간 본능 중 으뜸이다. 이를 이용해 상사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소심한 복수의 정석으로 통한다. 자동차 부품업체 K사의 방 대리는 회식 메뉴를 결정하는 부서 총무라는 지위를 이용해 잔소리꾼 직속상관 권 차장에게 슬쩍슬쩍 티 안 나는 복수를 하고 있다. 권 차장은 해산물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이를 알면서도 방 대리는 “오늘 회식 메뉴는 부장님이 좋아하시는 해물탕으로 하시죠”라며 부원들을 이끈다.

여성이 많은 패션 업계에선 음식이 좋은 복수 소재가 된다. 특히 상사가 다이어트 중이라면 효과 만점이다. 한 패션업체 마케팅팀의 고 대리는 원한이 쌓여 있는 여성 상사가 다이어트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면 ‘최근 뜨는 맛있는 디저트’를 남몰래 검색한다. 그리고 회의 때마다 초콜릿과 치즈케이크 등을 포장해 간식거리로 내놓는다. “다이어트하는 상사에겐 참아도 스트레스, 먹어도 스트레스가 되지요.”

◆소주 듬뿍 넣은 팀장의 폭탄주

김과장 이대리들은 직장 상사의 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하기도 한다. 주당이 많이 모인 영업팀에선 주로 술이 활용된다. 한 중소기업에서 판매·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강 대리. 그는 최근 부서원들과 함께 회식하면서 일부러 술을 엄청 마셨다. 부장을 만취하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결국 술이 약한 부장은 몸을 못 가누는 상태가 됐다. 그리고 다음 날, 강 대리는 ‘회식 사진’이라는 제목과 함께 얼굴이 벌개진 부장의 모습이 클로즈업된 사진을 회사 게시판에 올렸다.

대기업 영업팀에서 근무하는 정 대리는 사내에서 소문난 주당이다. 대학 시절부터 음주가무를 즐겨왔던 터라 주량은 물론이고 폭탄주 제조에도 도가 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대리는 이런 특기를 팀장을 골려주는 데 활용한다. 팀장 폭탄주에는 다른 팀원들보다 티나지 않을 정도로 소주를 조금 더 탄다. 워낙 능숙하게 제조하는 터라 티를 내지 않는다. 때문에 잔이 몇 순배만 돌아도 팀장은 표나게 취하기 마련. 팀장은 “나이가 들어 술이 약해졌다”고 스스로 탄식하지만 정 대리는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상향식 인사평가로 상사 응징

대기업 재무팀에서 근무하는 오 차장은 같은 부서 이 부장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능글능글한 성격에 농담 걸기 좋아하는 이 부장이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숫기 없는 오 차장에게는 스트레스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부장이 백화점에서 구입한 신상이라며 빛깔 좋은 가죽 구두를 신고 출근했다. 오 차장은 소심한 복수를 계획했다. 기회를 노리던 오 차장은 저녁 회식자리에서 슬며시 밖으로 나와 신발장에 있는 이 부장 구두를 꺼내 밟았다. “나이 40에 이런 복수밖에 못하는 제 자신이 작게 느껴졌지만 속은 시원하더라고요.”

IT 대기업 기획실의 한 대리는 작년 말 인사평가 시즌에 조용히 후배들을 불렀다. 전문성은 떨어지면서 막무가내로 업무 지시를 하는 부장에게 가장 낮은 D고과를 매기자고 제안했다. 평소 같은 불만을 가진 후배들도 적극 동조했다. 결국 상향 평가 성적이 좋지 않았던 부장은 인사팀으로부터 ‘경고’ 메시지를 받았다. “최근 부장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인간적으로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죠.”

◆‘빅 마우스’를 활용하라

사내 ‘빅 마우스(소문을 잘 퍼트리는 사람)’를 이용해 손에 피 안 묻히고 직장 상사를 곤경에 빠뜨리는 방법도 있다. 증권사에 근무하는 강모씨의 직속 상사는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아 부하들의 진을 빼놓는 데 선수다.

꾹꾹 참고 지내던 강씨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사내 대표 ‘빅 마우스’로 통하는 옆 부서 동기 하모씨였다. 강씨는 모처럼 하씨에게 커피를 사준다고 불러낸 뒤 직속 상사의 뒷담화를 쏟아냈다. 이틀도 안돼 차장은 사내에서 성격 이상하고 업무 능력 떨어지는 기피 대상 1호 상사로 올라섰다. “소심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고나 할까요.”

■ 특별취재팀 박수진 산업부 차장(팀장) 안정락(IT과학부) 황정수(증권부) 김은정(국제부) 강현우(산업부) 강경민(지식사회부) 임현우(생활경제부) 김대훈(정치부) 김동현(건설부동산부) 김인선(문화스포츠부) 추가영(중소기업부) 기자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