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현대사회와 직업윤리
찰스 플럼은 베트남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작전 중 격추당해 낙하산으로 탈출했고 그 후 긴 포로생활 끝에 생환했다. 그는 참전경험에 대해 강연을 다니다가 우연히 자신의 낙하산 접는 일을 담당했던 병사를 만났다. 플럼은 그때까지 그런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 플럼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전투기 조종사라고 장교클럽에서 의기양양해 하는 동안 누군가는 썰렁한 작업장에서 그를 위해 꼼꼼하게 낙하산을 접어줬던 것이다.

조선시대 지배계층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로 대표되는 개인윤리와 직업윤리의 통합은 당연한 것이었다. 개인윤리가 인간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이며 이를 갖추지 못한 자는 남을 지도할 수도 없고 국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심지어 가족의 잘못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묻곤 한다.

그러나 분업화를 통해 수많은 전문직이 움직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윤리보다는 직업윤리가 사회적으로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의료, 금융, 언론, 교통인프라 등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항상 도움을 받아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그들이 직업윤리를 지키고 있다는 믿음은 사회가 유지되는 바탕이 된다. 수많은 누군가가 매일 정해진 규칙에 맞게 우리의 낙하산을 접어주고 있으며 우리는 그 덕에 별 탈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직업윤리는 자신의 자리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직책과 관련한 권한을 남용하는 등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 엄격한 추궁이 필요하다. 반면 직무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사회가 지나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평소 많은 기부와 봉사활동을 통해 존경받는 사람이라도 관리하던 자금을 횡령했다면 엄히 처벌해야 하지만, 여러 번 이혼했고 낭비와 허풍이 심하다고 사회적 제재를 가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 즉 민주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바도 일종의 직업윤리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과 절차를 지키는 것,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것, 자기와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런 다른 견해를 참아주는 것, 규칙과 절차에 따라 결론이 나오면 결과에 승복하는 것, 이런 것들이 민주시민의 직업윤리라고 하겠다.

윤성근 < 서울남부지방법원장 skyline@scourt.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