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상이용사 모여사는 천호동 십자성마을 "40년 함께한 혈맹동지…우린 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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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공장 운영하며 주민 단합
장학금 전달 등 사회활동 활발
에너지 자립마을로도 선정돼
장학금 전달 등 사회활동 활발
에너지 자립마을로도 선정돼
지난 5일 오후 지하철 5호선 천호역 인근에 밀집한 단독주택 지역. 골목길을 200m가량 올라가니 주택가 사이에 있는 3층짜리 마을회관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회관엔 ‘국가유공자 용사촌’ ‘십자성 에너지마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건물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엔 계단 대신 폭 1.3m가량의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노성남 십자성마을회 이사는 “베트남 전쟁 때 부상을 입은 주민들을 위해 마을회관을 지을 때부터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경사로를 오르는 노 이사 역시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이곳은 1974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상이용사들을 위해 강동구 천호동에 조성된 십자성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북반구의 북두칠성처럼 남반구에서 방위를 가늠하는 별인 남십자성에서 따왔다. 부산에서 베트남까지 군함을 타고 갔던 길에 가장 밝게 보인 별이기도 하다.
십자성마을은 1971년 상이용사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했다. 각자 미래를 고민하던 차에 전우끼리 서로 의지하며 모여 살기로 한 것. 상이용사들은 직장 일이나 폐품 수집을 통해 돈을 모아 마을 건립 자금을 마련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십자성마을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위생용품 생산 공장을 마을 인근에 지어줬다.
논밭뿐이던 마을에 해병 출신 70가구와 육군 출신 30가구 등 주민들이 입주한 것은 1974년 12월이다. 올해로 만 40년이 됐다. 십자성마을은 서울에 있는 상이용사 마을 중 규모가 크다. 이곳에 지금도 46명의 상이용사가 살고 있다. 모두 전쟁을 경험한 전우여서 형제처럼 지낸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1975년 박 전 대통령의 지원으로 마을 근처에 세운 위생용품 공장은 1984년 안산 반월공단으로 옮겨갔다. 지금은 마을회관 2층이 본사 사무실 역할을 한다. 마을회원들이 모두 똑같은 지분을 가져 달마다 수익금을 나눈다. 주요 생산 품목은 붕대와 거즈 등으로, 전쟁 때 입은 부상 치료를 받은 회원들에겐 익숙한 것이다.
주민들이 오랫동안 함께하다보니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등 단합이 잘되는 마을로 손꼽힌다. 마을 정기총회 때마다 근처에 사는 어려운 중·고등학생 네 명에게 장학금을 준다. 2012년부터 서울시가 주관하는 에너지 자립마을로 선정돼 에너지 절약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과거만 하더라도 상이용사 마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십자성마을은 해외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큼 서울의 대표적인 마을로 거듭났다는 게 강동구의 설명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노성남 십자성마을회 이사는 “베트남 전쟁 때 부상을 입은 주민들을 위해 마을회관을 지을 때부터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경사로를 오르는 노 이사 역시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이곳은 1974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상이용사들을 위해 강동구 천호동에 조성된 십자성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북반구의 북두칠성처럼 남반구에서 방위를 가늠하는 별인 남십자성에서 따왔다. 부산에서 베트남까지 군함을 타고 갔던 길에 가장 밝게 보인 별이기도 하다.
십자성마을은 1971년 상이용사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했다. 각자 미래를 고민하던 차에 전우끼리 서로 의지하며 모여 살기로 한 것. 상이용사들은 직장 일이나 폐품 수집을 통해 돈을 모아 마을 건립 자금을 마련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십자성마을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위생용품 생산 공장을 마을 인근에 지어줬다.
논밭뿐이던 마을에 해병 출신 70가구와 육군 출신 30가구 등 주민들이 입주한 것은 1974년 12월이다. 올해로 만 40년이 됐다. 십자성마을은 서울에 있는 상이용사 마을 중 규모가 크다. 이곳에 지금도 46명의 상이용사가 살고 있다. 모두 전쟁을 경험한 전우여서 형제처럼 지낸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1975년 박 전 대통령의 지원으로 마을 근처에 세운 위생용품 공장은 1984년 안산 반월공단으로 옮겨갔다. 지금은 마을회관 2층이 본사 사무실 역할을 한다. 마을회원들이 모두 똑같은 지분을 가져 달마다 수익금을 나눈다. 주요 생산 품목은 붕대와 거즈 등으로, 전쟁 때 입은 부상 치료를 받은 회원들에겐 익숙한 것이다.
주민들이 오랫동안 함께하다보니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등 단합이 잘되는 마을로 손꼽힌다. 마을 정기총회 때마다 근처에 사는 어려운 중·고등학생 네 명에게 장학금을 준다. 2012년부터 서울시가 주관하는 에너지 자립마을로 선정돼 에너지 절약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과거만 하더라도 상이용사 마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십자성마을은 해외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큼 서울의 대표적인 마을로 거듭났다는 게 강동구의 설명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