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일본 영상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의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일본 영상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의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
지난 10일 한·중·일 작가 3인(양아치, 쉬전, 고이즈미 메이로)의 전시 ‘미묘한 삼각관계’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3층 전시실 안. 어두컴컴한 공간 왼쪽에선 일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의 영상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samurai·2009)’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장기를 두건처럼 쓴 일본인 연기자가 가미카제(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 출전을 앞둔 군인을 연기한다.

처음엔 장난치듯 카메라 앞에 선 연기자는 작가의 요구를 따라가며 감정이 격앙된다.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고결한 목적(자살공격)을 위해” 등 일본 군국주의 구호를 외친다. 그러다 “내 아들아, 가지마, 제발 엄마와 머물러 다오” 하는 어머니의 절규를 듣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쏟는다.

9분40초짜리 영상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알고 보면 우리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일본 측 주장 말이다. 일본은 자국의 역사교과서, 원폭 기념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국의 공습과 원폭 투하로 수많은 일본인이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봤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스스로 전쟁을 일으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해놓고, 자국도 피해를 봤다는 논리는 주변국의 공감을 사지 못했다.

고이즈미의 다른 영상작품 역시 일본의 합리화 논리를 떠올리게 했다. ‘갇혀진 말(Trapped Words·2014)’에는 원폭으로 실명한 한 노인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그는 죽을 만큼 덥고, 앉을 수조차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방공호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인터넷상에 가미카제 전시 논란이 일자 시립미술관 측은 11일 작가의 의견을 담은 보도자료를 내고 해명했다. 고이즈미는 “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역사에 대한 지식 없이 가미카제나 사무라이 등을 영웅시하는 풍토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역사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우기 위한 작업”이라며 “이 작품은 국가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한 개인의 비극을 조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늘날 사람들은 ‘가미카제’라는 단어를 이데올로기의 무게와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인식 없이 너무나 가볍게 사용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굉장히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는 계속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민들이 과연 자신들의 세금이 들어가는 미술관에서 일본인의 역사관을 담은 작품을 공감하며 즐길 수 있을까.

이번 전시의 더 큰 문제는 “한·중·일 삼국의 문화 지형도를 짚어보겠다”고 해놓고 전시장 어디에서도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67)은 지난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는 역사 속에서 미묘한 관계를 형성한 삼국 관계의 진행 상황을 미술을 통해 풀이하고 암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읊조렸다. 그뿐이었다. 세 종류의 언어는 유기적으로 결합하지도, 공명하지도 않았다. 세 작가의 작품을 왜 ‘미묘한 삼각관계’란 타이틀 안에서 해석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김인선 문화스포츠부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