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최저임금 인상? 임금체계 개편!
가정형편상 넷이나 되는 형제에게 과외를 시키기 어려웠던 어머니는 대학 입시를 앞둔 필자에게 세 개뿐인 방 중 하나를 내주었다. 독방에서 방해받지 말고 공부에 열중하라는 의도였다. 문제는 그 방에 온가족이 먹을 1년치 쌀을 쌓아 놓아야 했다는 것이다.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다. 가을 추수 직후 사 놓은 쌀가마니에서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하얀 쌀벌레가 기어 나왔고, 여름으로 갈수록 검은 나방이 날아다녔다. 해방 후 20년간 연평균 68.9%, 다음 20년간 13.1%, 그다음 20년간인 2005년까지 연평균 4.7% 상승하는 인플레시대를 살았던 삶의 단면이다.

그런데 세월이 바뀌어 이젠 거꾸로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주 디플레가 큰 걱정이라며 인금인상 논의에 불을 지폈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담뱃값 인상에도 불구하고 1999년 7월 이후 15년7개월 만에 최저치인 0.5%로 떨어진 시점에서다. 한 발 더 나아가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려 소비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작심 발언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1~2012년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5.7%인 데 비해 기업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9.8%에 이른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자 손에 돈이 더 갈 수 있는가다. 통계청의 2014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의하면 임금근로자 1878만명 중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의 87.6%가 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1~4인 사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도 45.5%나 된다. 즉, 최저임금을 주는 기업은 쉽게 말해 완충지대가 없는 영세기업들이란 얘기다. 당장 법정임금을 올리라고 하면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할 만큼 빠듯한 곳들이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려봤자 근로시간을 줄인다면 근로자 개개인이 손에 쥐는 돈은 늘지 않는다. 교과서대로라면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려서 오른 인건비를 충당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선 영세업자들이 가격을 올리며 경쟁하기는 어렵다. 영세업자들이 몰려 있는 업종은 주로 도소매, 개인서비스, 보건, 복지, 교육 분야다.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경쟁 또한 치열한 업종이다. 이런 데서 해고되는 노동자는 연로해 곧장 은퇴를 하거나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어려운 여성, 저학력자들이어서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론에 정치권은 환영 일색이다.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것은 정치권과 정부가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 정말로 고민해야 할 것은 이원화된 한국의 노동시장과 임금체계 문제다. 고(高)생산성·고임금이며 고용이 안정된 상위 노동시장과 저(低)생산성·저임금에 고용도 불안한 하위 노동시장 간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지난해 3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이라도 놓고 노사가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경기 살리기로 코너에 몰린 기재부가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상황까지 왔는데 고용부가 애써 발표한 임금체계 개편안 논의에 별 진전이 없다는 게 우리 노동시장 문제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대법원에서 통상임금 판결도 나온 만큼 이참에 임금체계 문제를 노동과 경영의 핵심 이슈로 놓고 변화된 환경에 맞춰 경영계와 노동계가 서로 타협하는 데 총력을 다하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이 대거 방문해 배우고 왔다는 독일의 하르츠 개혁처럼 전문가 논의 결과로 만들어진 정부안을 먼저 제시하고 노사가 합의하도록 하되 일정 기한 내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안으로 확정하는 ‘임금 빅딜’을 제안한다. 물론 이런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것이 먼저다. 디플레시대의 임금인상 논의가 치열한데 임금체계는 아직도 인플레시대의 그것이라면 지금의 경제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